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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16   모리(毛利)가문의 역사 [7]
모리(毛利)가문의 역사
- 일본 중세사를 들을 때 가마쿠라 시대 장원들에 대해 배우면서 처음으로 '모리' 장원, 그리고 그 모리장원을 하사받은 후 성을 모리로 고쳤던 오오에(大江) 스에미츠(季光)의 이름을 봤을 때가 생각납니다. 게임에서 모리씨를 즐겨 하고 드라마, 교양역사서 등에 모리 모토나리와 모리 가문이 등장하면 열심히 보고 읽긴 했지만 실제 역사에서 모리씨를 만나게 된 건 처음이었기 때문에 굉장히 반갑고 재미있게 수업을 들었었지요.

- 오오에 씨는 먼 선조대는 확실히 알려져 있지 않고 가마쿠라 막부 창업공신이었던 오오에 히로모토부터는 확실한 계보가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그 오오에 히로모토의 4남이 오오에 스에미츠였고 사가미국(노부나가의 야망식으로 하자면 호죠가문의 지배국)의 모리장원을 하사받은 후 분가해 성을 모리로 바꾸고 모리가의 초대 당주가 됩니다. 대를 이으며 에치고(역시 노부나가의 야망 식으로 이야기하자면 우에스기 겐신의 본거지), 아키 등에 장원을 받게 되는데 아키에 받은 영지가 훗날 모리 모토나리 시절의 본거지인 요시다(吉田) 장원이죠. 코오리야마(郡山)성이 모리가의 본성이 되고 아키의 국인 수준으로 떨어져 버리는 건 모리가가 자손들에게 영지를 조각조각 분할해 상속했기 때문으로 시간이 흘러 오닌의 난 즈음(16세기 초)이 되면 요시다의 모리씨 외에는 자신의 영지를 가진 모리씨는 성을 바꾸거나 멸망해 버려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게 되어버립니다.

- 드라마나 소설을 보신 분이라면 이노우에(井上)씨족이 다른 명문들에 비해 미천한 가문이라는 식의 묘사를 보셨을 겁니다. 기껏해야 국인영주로 직할지 전체 석고가 12000석(코오리야마성 10800, 사루카케성 1200)에 불과한 주제에 무슨 가신에 명문이 있냐고 의아해 하셨을 텐데요 :b 요시다 모리가가 대를 내려가며 가독을 이어받지 못한 아들들이나 서자들에게 나눠준 영지를 영유하는 모리씨의 일문(시간이 지나며 일문중의 개념은 희미해졌겠지만)들이었던 후쿠하라, 카츠라, 시지(네. 게임에서 초반에 가신으로 나오는 쓸만한 무장들의 성이죠 :b 드라마나 소설에서 활약하는 이들의 성이기도 하고) 씨에 비해 이노우에씨는 일문 외의 가신이었고 무엇보다 경제력을 기반으로 두각을 나타낸 일족이었기에 다른 가신 가문들이 얕잡아보는 면이 있었겠죠. 그런 출신성분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노우에 일족은 1200석에 불과한 사루카케성 성주 시절의 모토나리의 후견역이 되어 있다가

오우찌 -> 아마고 -> 오우찌, 모토츠나 -> 모토나리 식으로 배신에 배신을 거듭해 나가며 세력을 키워 나갑니다.

결국은 모토나리에 의해 일족 전체가 숙청되어 버리죠. 노부나가의 야망 예전 시리즈에선 이게 이벤트로 구현되어 있었습니다만, 무슨 이벤트인지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겠죠 :b

(오닌의 난에 오우찌편으로 아마고, 모리, 킷카와 등 근처 다이묘, 국인들은 모두 참전합니다. 아마고가 멋대로 회군해 주인도, 병력도 쿄로 가버리고 무주공산이 된 쥬고쿠 지방을 차지하는 건 일단 제쳐두고. 모리 가문은 300명의 병력을 파견합니다(당시 모리가문의 전체 병력은 900명;) 그리고 많은 수의 병사가 죽게 되는데 가장 많은 전사자를 배출한 것도 이노우에 씨족이었죠. 돈도 가장 많이 냈고. 이런 것도 다 가문의 출신성분 때문일 겁니다. 그건 그렇고, 훗날이 되면 너무나 흔해지는 '오니'라는 이명은 오닌의 난 시절에도 많아서 킷카와의 병사들이 용맹하다고 해서 '오니 킷카와'라는 이명을 근방 가문 중에선 유일하게 얻었다는 건 따로 적으려다.. 이렇게 적게 되는군요(야;) :b)

- 모리 가의 가몬에 대해 적으려던 글이 프롤로그 격으로 길어져 버렸는데요(야;) 한 가지만 더 적어 보겠습니다.

흔히 모리 양천(兩川) 체제라고 하는 킷카와(吉川), 고바야카와(小早川) 가문에 양자를 보내 모리가 번영의 포석을 쌓았다는 일화. 그 두 가문이 뭐길래? 라고 생각하시겠죠 :b

노부나가의 야망 시리즈에선 가끔 선택 가능한 가문으로 등장하기도 하는 킷카와, 고바야카와이고 천하통일 등의 게임을 하면 아키 내에선 꽤나 세력이 있는 가문이지만 그래봐야 아키 유력 국인가문 10개 정도 중 하나일 뿐인데 말이죠 :b

그 이유는 그 두 가문이 '명문가' 이기 때문입니다.

말 그대로의 지방 국인에 불과한 가문들에 비해 그나마 모리는 가마쿠라 막부 이래의 명문가이지만 양천과 다케다씨는 모리와도 비교가 안 되는 명문가였던 것이죠.

원래 수호였던 다케다씨 = 겐(原)지

고바야카와씨 = 헤이(平)씨

킷카와씨 = 후지와라(藤原)씨

로 되어 있습니다 :b 좁은 아키 안에도 겐지, 헤이씨, 후지와라씨의 후예들이 다투고 있었고 겐지의 가신 출신인 모리가 겐지의 후예를 멸망시키고 헤이씨, 후지와라씨를 흡수합병해 버린 것이죠 :b

(아마고 츠네히사의 부인은 킷카와가 출신이죠. 아마고 츠네히사의 명으로 모토나리와 결혼하는(게임에선 한눈에 반하는 걸로 되어있지만 하하;)킷카와의 딸은 소설에서 그런 하찮은 가문엔 갈 수 없다고 하다가 억지로 시집오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기도 합니다. 하하;;)

킷카와, 고바야카와 양가도 결국 전국이 끝나갈 즈음엔 모리씨로 돌아와 모리 본가와 구분되는 모리 지파가 4개 더 생겨납니다. 킷카와 가(차남)에서 두 명, 고바야카와(삼남)에서 한 명, 그리고 모토나리의 6남이 모리 성을 사용하는 걸 허락받아 최종적으로는 본가와 지파 4개로 구성되는 게 '모리 가문'인 것이죠.

사타케(좌죽)씨나 안도(안동)씨를 봐도 그렇지만, 동서남북 식으로 해서 4개 지파를 두고 그 위에 본가를 둬서 가문을 유지하는 걸 좋아하나 봅니다. 하하;

덧) 뭔가; 애매한 글이 되었는데; 원래 적으려던 글은 모리가의 가몬(문장)으로 보는 동서양에서 오리온자리에 갖는 동일한 이미지에 대한 글이었습니다. 그건 다음에 적어 봐야겠군요 orz
by 산왕 | 2008/04/16 19:24 | 건전한 역사잡상 | 트랙백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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