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년 하이드파크의 집회 이래 여성참정권을 주장하는 목소리는 커져만 가고 있었습니다.
1913년 자기 집에 불을 질러 3년형을 언도받은 여인 덕에 여성참정권에 반대한 정치가로 로이드 조지도 유명하지만, 1909년 11월16일자 맨체스터 이브닝에 실린, 여성참정권을 주장하는 여인에게 채찍으로 얻어맞으려는 처칠의 그림 덕에 처칠은 여성참정권에 반대하는 대표적 정치가로 알려졌습니다.
후에 처칠은 참정권을 주장하는 여성단체에게 협박을 받기도 했었는데, 당시 처칠은 아내에게 이런 편지를 보냅니다.(1913년)
"우체국을 통해오는 우편물들을 열어보지도 말고, 열지 않은채로 집에 두지도 말아요. 받는 즉시 아주 조심스레 처리해야 하오. 저 사나운 여인네들이 우리를 폭발물로 날려버릴 수도 있으니 말이오"
(역시 유나바머나 탄저병편지가 나오기 훨~씬 전부터 우편물은 위험했던 겁니다 :b)
아무리 봐도 저 사례(편지를 보낸)는 여성참정권에 극렬반대하는 처칠이나, 협박에 굴하지 않는 처칠의 사례로 적당할 것 같은데, D사에서 나온 처칠의 전기에는 저 사례가 처칠의 신중함을 나타내주는 사례로 인용되어 있습니다.
저에겐 아무리봐도 신중함을 보여주는 사례로 보이지는 않습니다만, 역시 제가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는 걸까요 :b
# by 산왕 | 2004/10/14 02: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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