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적 징병제의 시작
근대적 징병제가 가장 먼저 실시된 나라는 어디일까요?

바로 프랑스입니다. 프랑스는 3세에 의해 더욱 더 전설에 가까워진 저 '촌뜨기' 장군(나폴레옹)이

"전쟁에서 승리는 궁극적으로 대군에 돌아간다"

고 한 이래, 총통(히틀러)에게 깨질 때까지도 육군의 수가 전쟁의 성패를 결정짓는다고 믿고 있었지요. 물론, 지금도 통하는 전쟁의 진리이기는 하지만, 그 의미가 '사람'에서 다른 것. 예를 들어, '전차'나 '비행기'로 바뀌어가는 것을 프랑스는 캐치하지 못한 셈이지만, 그건 제쳐두고.

1792년 4월 프랑스의 선전포고로 시작된 소위 '혁명전쟁'은 프랑스와 오스트리아-프로이센 간의 전쟁이었습니다(시작은). 그 뒤, 2년 간의 전쟁에서 명장으로 이름높은 라파예트 장군은 10만 대군을 이끌고도 연전연패를 기록합니다.

그리고, 명장답게(폭소) 그 패배의 원인을 촌뜨기 장군의 말에서 빌어와 군인의 '수'로 돌리지요. 혁명의회(프랑스 입법의회)에서는 군대를 확충할 필요가 생겼습니다. 이 와중에서 발명해낸 것이 '민족주의', '국가주의'라는 것입니다만, 그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하기로 하고, 실질적으로 의회에서 한 것은 전국에 격문을 뿌린 것 뿐이었지만, 그 효과는 대단했습니다. 프랑스의 젊은이들이 죄다 군대에 지원해 왔으니까요(웃음)

격문 내용이야 뭐, 뻔한 것이지요.

"조국이 위험에 처해 있다. 프랑스인이여, 일어나라 어쩌구.."

물론, 시골사람들이 군에 지원한 건 격문이나 사상 때문이 아니라, 당시 유럽에서 최첨단을 달리던 프랑스 육군의 군복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지만(있다기보다, 꽤나 설득력이 있지만) 그 뒤까지의 영향을 봤을 때 저들이 개발한 사상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는 말 안해도 아실 겁니다(우리나라만 봐도...).

아무튼 그렇게 해서 모인 군대는 1794년 9월 116만 9천명에 이르렀습니다. 이 숫자는 적들의 모든 군대보다도 많은 것이었으니, 승리는 자명해 보였고, 우쭐해진 의회는(우쭐해질 만 했지요?)

"공화국의 영토에서 적들이 사라지는 순간까지 모든 프랑스인들은 싸울 것이다"

라고 발표하지요. 다만, 그들이 생각하던 프랑스 영토가 좀 엄했다는 거지만..그 영토란 게 주변국의 영토를 포함한 것이었거든요(대폭소).

아무튼, 프랑스의 인해전술에 밀린 유럽 각국은 징병제를 추진하게 되고, 징병제는 프랑스식이 기본이 되었지요. 그 바람에 민족주의, 국가주의는 더욱 널리 퍼지게 된 거구요.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의 징병제도 18세기의 그것과 그다지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덧1) 단순하게 설명한 것이니,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말아주세요(마지막 부분을)~

덧2) 촌뜨기나 총통 뒤에 이름을 밝힌 건 평소 안 하던 짓인데(웃음).. 이해해주세요..

덧3) 이걸로 한 페이지에 그림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하
by 산왕 | 2004/08/26 13:18 | 건전한 역사잡상 | 트랙백 | 덧글(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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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Dousei at 2004/08/26 13:23
우리나라의 민족주의도 18세기의 그것과 별 차이가 없죠.
그게 근대에 발명된 하나의 도구라는 것을 인식하는 사람은 적은 듯 합니다.
Commented by 아리스 at 2004/08/26 13:40
아아, 군대가기 싫습니다.(...)
......더 미루면 난감해지니 가기야 가겠지만.
Commented by Mizar at 2004/08/26 13:59
중국의 전국시대 열국(특히 진)의 병원충원도 징병제라고 할 수 있다면 국민개병에 바탕을 한 징병제는 오히려 상당히 오래된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만..
Commented by Tanzwut at 2004/08/26 13:59
사실 이 양반은 워낙 핑계대기를 좋아하시는 분이었으니까요.
Commented by 地上光輝 at 2004/08/26 14:13
프랑스의 대표적인 영토 만행이라면 역시 알자스-로렌 땅따먹기를 들 수 있겠죠.
Commented by skan at 2004/08/26 15:46
하여튼 무능한 장군이 문제군요-_-
Commented by klesa at 2004/08/26 16:22
당시 혁명군에 참가하기 위해 마르세이유에서 파리까지 행진했던 한무리의 의용병이 있었으니.. 그들이 행진하면서 불렀던 노래가 '라 마르세예즈'였다는 사실...이죠? 현재 프랑스는 물론 주력은 외인부대등과 같은 지원병들이지만.. 이런 역사적 전통때문에 국민개병제를 아직까지도 포기하지 않고 있죠..
Commented by 鬼畜の100 at 2004/08/26 19:01
후훗..싸움은 엘레강스하게... 이순신장군처럼 소수로 다수를 이기는게 진정한 전술인데 말이죠..ㅡ.ㅡa
Commented by 로리 at 2004/08/26 20:20
鬼畜の100 > 이순신 제독이 소수로 다수를 상대한 것은 명랑해전 밖에 없습니다. 대부분의 나머지 전투는 항상 다수로 소수를 공격했습니다. 명랑을 전장으로 삼은 이유는 소수로 다수를 이길 수 있는 단 한군데의 장소였기 때문입니다.
Commented by 내모선장 at 2004/08/26 23:05
로리 // 이순신 장군이 소수로 다수를 상대한 적은 명량 말고도 또 있습니다. 바로 부산해전이죠. 자세한 건 오래 전이라 기억이 나지 않았는데 얼마전에 아는 후배 집에서 빌려 온 책에 100여척의 삼도 수군 배로 400여 척이 밀집해 있는 부산을 쳤다고 나와 있더군요. 특히 부산 쪽은 들어가는 길이 좁아 종진으로 들어갔으니, 잘못 됐다가는 대파됐을 듯...

그리고 병력이 아무리 많아도 지휘를 잘못하면 지는 게 당연합니다.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에서는 이렇게 말했죠.

"한 마리의 사자가 지휘하는 백 마리의 양 군대가 한 마리의 양이 지휘하는 백 마리의 사자 군대보다 강하다."

이 말 아니더라도 예야 얼마든지 있으니...(국내만 해도 을지문덕 장군이나 강감찬 장군 같은 좋은 예들이 많더군요.)
Commented by 내모선장 at 2004/08/26 23:08
鬼畜の100 // 그리고 소수로 다수랑 싸우는 건, 기본적으로는 자멸의 첫째 조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지휘관의 능력이나 병사들의 능력, 지형, 무기의 질이나 양 등의 조건이 낫다면 가능할 지 모르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숫자에 좌우되죠. 수가 많다면 이것저것 시도해 볼 수도 있고... 보기에는 좋지만, 지휘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상당히 골치아픈 게 소수로 다수를 상대하는 게 아닐까요.(삼국지를 보시면 제갈양과 사마의의 싸움 때 그 딜레마가 여실히 드러나죠.)
Commented by rumic71 at 2004/08/26 23:54
어떻게 운용하느냐의 문제입니다. 걸프전때만 해도 이라크군 병력이 다국적군 병력보다 쪽수는 많았습니다. 지금의 이라크전에 대해서는... 역시 쪽수가 통하는 게 아니라고 말씀드려야겠군요. 그 입장이 뒤집혔건 아니건 간에.
Commented by 불탄五징어 at 2004/08/27 00:28
지금은 쪽수 보다는 전체적인 전력(기술력이라던지 화력)이 좌우하는 전쟁으로 봅니다만...이 이야기가 아닌거 같은데..... 'ㅅ')y~
Commented by d4d357r033dkiD™ at 2004/08/27 01:09
말씀대로..., 저 말을 들은 평범한 지휘관들의 반응이 문제였지요...

대규모 병력을 이끌며 무조건 전진을 명하는 것만으로 전쟁을 이길 수 있다는 사상이 1차대전기간 내내 너무나도 충실하게 실천으로 이어졌다는건 정말 비극입니다.
Commented by 캡틴터틀 at 2004/08/27 02:21
쪽수는 무섭습니다. 다구리엔 장사 없다는걸 새삼 느끼고 있으니까요... 전쟁이건, 언쟁이건.
Commented by 로리 at 2004/08/27 08:06
병력의 집중과 기동면에서 미국이 앞섰습니다. 전쟁은 쪽수이고 미국은 항상 그 부분에 대해서 가장 잘 이해하고 있다고 봅니다.
Commented by 산왕 at 2004/08/27 11:11
/도우세이...그걸로 먹고사는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이지^^

/아리스님...군대도 뭐 나쁘지는 않았습니다(응??)

/Mizar님...아, 제목을 바꾸고 나서 확인하게 되었군요(덧글을)^^; 그 말씀도 일리는 있습니다. 다만, 근대적 징병제는 '민족주의'나 '국가주의'를 기본으로 하고 있어 좀 다르지요^^

/Tanzwut님...그래도 명장이라 불렸으니까요(아니면 그것 때문에 명장이었으려나요?)

/地上光輝님...뭐, 베네룩스 침략이나 이것저것 있지요^^

/skan님...으음..자신은 대단한 명장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텐데..그게 더 문제군요^^

/klesa님...시골사람들은 파랗게 물들인 군복에 뿅 갔다는군요(표현이...)

/鬼畜の100님...분명 멋은 있지만, 실제로는 힘든 일이지요^^; 해선 안 되고요.. 얀 웬리가 대단한 것이 소수로 다수를 이겼다는 것이지만, 더 대단한 것은 다수로 소수를 상대해야 한다는 걸 철저히 알고 있었다는 점이겠지요^^

/로리님,내모선장님...답변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산왕 at 2004/08/27 11:14
/rumic71님...첨단기술, 레이다..원폭..뭐, 쪽수는 중요하지요^^ 원폭을 못 쓰는 국제여론 같은 것도 다 쪽수에 속하는 거 아니겠습니까^^(그렇게 생각해버리면 아닌 게 없군요 하하;;)

/불탄五징어님...그게 바로 지금의 쪽수이지요^^ 군인의 수와는 다른 개념 아니겠습니까

/d4d357r033dkiD™님...대군이 승리한다..이 대군의 의미가 군인의 수라고 굳게 믿고 있었던 게 문제이지요..

/캡틴터틀님...네^^ 다구리는 무섭지요;;

/로리님...미국은 이해한다..는 건 기분나쁘지만, 뭐 쪽수를 가장 잘 알고 가장 잘 써먹는 건 분명하군요^^
Commented by 영원제타 at 2004/08/27 16:15
다수라면 역시, 6.25 사변당시 중공군 생각이 납니다.
Commented by 산왕 at 2004/08/29 01:11
/영원제타님...인해전술은 중국에서는 오래된 전술이었지요^^
유럽에서는 생소했을 겁니다
Commented by arbiter1 at 2004/08/31 03:54
과연... 그렇군요. 하지만 춘추시대나 전국시대에도 징병제가 있었는데 이게 또 다양하다는......._Ami
Commented by 산왕 at 2005/09/05 23:45
/arbiter1님...동양의 고대의 100만대군 같은 건 서양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지요^^; 특히 무장하는 데 돈이 엄청 들게 되면서 더욱 그렇게 되어갔습니다
Commented by Kimbros at 2007/01/17 15:58
지금 원정출산의 기원인 속지주의 국적법을 가장 먼저 채택한것도
프랑스입니다. 이유는 물론 징병하려고죠.
결과적으로 나폴레옹을 괴멸시킨 영국은 모병을 채택하고 있었죠.
넬슨제독도 징집을 하면 사기만 떨어지고 조함술도 모른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요.
웰링턴도 워털루에서 숫적으로 떨어지면서도 모병과 좋은 대접을
기본으로 하는 영국군의 승리를 믿고 있었죠.
(블루허가 안왔으면 졌을거라는 의견이 지배적인디 얼마전 워털루 관련 다큐를 보니까 또 약간 생각이 바뀌더군요.)

하여간 재밌는것은 이 프랑스가 지금은 반미에다가 돈많은 좌익국가처럼 되서 징병회피자들의 망명처가 되있고요.(프랑스는 아니지만 나역시)
예전에 서울에서 같이 지내던 프랑스친구한테 한 한국 사람이
군대 가야지 남자 답게 된다 어쩌고 애국심이 어쩌고 하니까
이 한마디로 말을 끊더군요

"남자 다운게 뭔데? 한국에서 남자 답다는거는 '나 무기 쓸줄 안다' '나는 살인 훈련을 받았다' '나는 군대에서 사람들을 때렸다' 이런것인가? 이런제도에 맞서 싸우는거야 말로 남자 답다는거다!"

지금의 한국을 생각하면 사회진화론이라는게 타당성이 있는가 라는 생각이 들때가 있음.

하여간 여기 글들 재밌네용.. 잘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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