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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리모토 카오루씨의 '다크타워' 서평 by 산왕

스티븐 킹의 '다크타워' 4부 하권이 국내 출간 되었더군요. 예전 판본으로 3부 '황무지'까지 봤는데 4부 상권이 나온 것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 기회에 새 판본으로 처음부터 다시 보려고 생각중이고요^^;

다크타워 일본판은 매권 일본의 판타지 소설 작가들이 서평을 적어줬는데, 3권 서평을 적은 분은 지금은 작고하신 '구인사가'의 구리모토 카오루씨입니다.

스티븐 킹이 다크타워 집필을 시작할 때의 목표가 '세상에서 가장 긴 판타지 소설을 쓰는 것'이었다는데, 이걸 생각하면 구리모토씨가 다크타워 서평을 쓰는 건 매우 그럴 듯 하죠^^;

한국에서도 저런 시도들을 하면 재미있을 것 같은데, 유명작가들의 릴레이 서평같은.. 판타지 장르라면 쓸만한 분이 많을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구리모토씨가 2005년에 쓴 서평을 소개해 봅니다. 이게 아마 전체는 아니더라도 일부는 한국 온라인서점 등에 올라가 있을 거에요(찾아보면 전문 올려둔 데도 있을지도?)

서평 번역은 번역가 장성주님이 하신 겁니다. 다크타워 발간 기사를 쓰며 서평을 소개하고 싶었는데 기사에 싣기는 분량상 애매해 블로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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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스티븐 킹과 인연이 있다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아예 인연이 없는 사이도 아닌 것이, 『그린 마일』 시리즈 가운데 한 권에 해설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고 교정쇄를 읽은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죽음의 춤』이라는 에세이집도 읽은 적이 있기는 합니다만, 사실 저는 호러 소설을 써서 사람들을 겁먹게 하는 주제에 정작 스스로는 겁먹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킹의 소설은 되도록 안 읽으려고 하지요. 게다가 과문한 탓에 이 「다크 타워」라는 시리즈는 금번에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다크 타워’를 읽고 나니 제가 이때껏 지니고 있던 킹의 이미지가 조금은 변한 듯도 싶군요.

시리즈 각 권의 여는 글에서 스티븐 킹은 ‘세상에서 제일 긴 판타지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비록 곧바로 좌절하고 말았다는 내용이 이어지기는 하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킹 선생한테 좀 미안하게 됐군’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뒤이어 그런 저한테 「다크 타워」 3부의 해설을 맡긴 편집자는 꽤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제일 긴’이라거나 ‘세상에서 제일 대단한’ 또는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등등, 무엇이든 간에 ‘세계 최고’를 쓰고 싶다는 마음은 조금이라도 능력이 있는 작가라면 당연히 품게 되는 법입니다. 어쩌면 무엇보다 큰 꿈일 테고요. 물론 그 모두를 겸비할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그렇게까지 욕심을 부려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러나 모름지기 작가란 모름지기 업이 깊은 인간이기도 하지요. 아직 읽는 도중이기는 합니다만, 이 「다크 타워」를 읽다 보니 오랜만에 이런저런 감회에 젖게 되는군요.

「다크 타워」 시리즈는 이른바 ‘다크 판타지’입니다. 저는 무슨 까닭에선지 그 말 자체가 재미있더군요. 요즈음 이른바 ‘라이트 노벨’이나 ‘라이트 판타지’라는 장르가 유행하는 중인데 이쪽의 ‘라이트’는 가볍다는 의미로서 ‘다크’와 대비되는 것은 아닙니다(혹시라도 전문용어로서 정확히 대비되는 의미라면 미리 사과를 구합니다.). 이러한 라이트 노벨의 전성기인 지금(일본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인지도 모릅니다만) 이 다크 타워처럼 ‘다크’하고 ‘헤비’한 판타지가 인기를 끌다니, 무척이나 흥미있는 일입니다. 다크한 판타지라고 하면 저 같은 사람은 마이클 무어콕이 쓴 「엘릭 사가」를 떠올리게 마련입니다만, 다크하기로 따지면 「다크 타워」 쪽이 단연코 최고이지요. 

스티븐 킹 본인은 ‘세상에서 제일 긴 판타지를 쓰려다가 좌절했다’라고 말합니다. 제 입으로 말씀드리기는 뭣합니다만, 실제로 세상에서 제일 긴 판타지를 쓰는 제가 말씀드리자면 스티븐 킹의 포부는 좌절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제가 쓰는 「구인 사가」 시리즈가 「다크 타워」와 비교하여 얼마나 라이트한가 하는 문제는 저 스스로 말씀드릴 바가 아닙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하기에 거북이 같은 몸뚱이를 지닌 뱀은 뱀으로 부를 수가 없거니와(맙소사, 무슨 이런 비유를!), 뱀처럼 기다란 몸뚱이를 지닌 거북이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 법입니다. 아무리 퉁퉁한 뱀이라고 해봐야 고작 아나콘다이고, 세상에서 제일 큰 거북이라고 해봐야 몸 길이가 너비의 배 이상 될 리가 없지 않습니까? 얘기하면 할수록 시시한 비유이기는 합니다만 ‘무거운 놈은 날지 못한다’라는 법칙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어떻습니까, 「다크 타워」 시리즈가 100권이 넘게 이어진다면 좀 무섭지 않습니까?

뭐라고 하면 좋을까요. 저는 이 「다크 타워」에 그려진 세계가 마음에 무척 마음에 듭니다. 그러나 이 시리즈가 100권까지 이어진다고 하면, 솔직히 말해 감당하기 힘듭니다. 역시 예닐곱 권, 아니면 열 권 정도로 ‘와, 굉장하다. 과연 스티븐 킹이야. 역시 킹(king)이라니까.’ 이렇게 기뻐하면 좋을 만한 중량급 ‘다크 노벨’이면 그 자체로서 훌륭하지 않을까요. 「다크 타워」 시리즈는 무서울 정도로 공들인 구성에 문체도 등장인물도 중량감 만점이니까요. 게다가 어두우니 어쩌니 해도 가장 감탄스러운 점은 바로 주인공 롤랜드가 심한 부상을 입고 빈사 상태가 되어서도 멈추지 않고 싸운다는 사실입니다. ‘용케 안 죽네. 이 녀석 혹시 사이보그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근성 있는 주인공이지요. 라이트 노벨이라면 냉큼 끝내버렸을 텐데 말입니다. 거기에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음산하고 참혹한 분위기가 빚어내는 묵직함이지요. 누구도 아닌 스티븐 킹만이 이토록 기괴하고 매혹적이며 어두운 세계를 꾸준히 써내려갈 수 있습니다. 실로 중량감과 사실감이 가득한 작품, 따라서 작가가 힘을 내면 낼수록 무거워질 수밖에 없는 작품입니다. 그 ‘묵직함’은 대단히 매력적이지만, 솔직히 말하면 매력적인 동시에 약점도 지니고 있다고 해야겠습니다. 몸 상태가 안 좋을 때에는 읽을 마음이 안 든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몸 상태가 최고로 좋을 때 이 책을 읽고 어두움에 젖으면 어떤 기분일까 하는 생각도 드는군요. ‘스티븐 킹을 읽을 시간’이 따로 있다고 한다면 뭐랄까, 세상도 인간도 신물이 날 때, 다른 세계로 가버리고 싶을 때가 아닐까요. 그런 기분이 들 때 「다크 타워」 시리즈를 끼고 읽다 보면 그쪽 세계로 완전히 건너가서 돌아오지 못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듭니다. 제가 쓴 「구인 사가」 시리즈는 세상에서 가장 긴 판타지이자 십중팔구 ‘세상에서 가장 빨리 읽는’ 판타지가 아닐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독자들께서 읽기가 무섭게 ‘다음 권은?’ 하고 외치시니 말입니다. 스티븐 킹도 「다크 타워」 시리즈가 안 나오는 동안 재촉 편지를 산더미처럼 받은 나머지 이러다 편지에 깔려죽지나 않을까 겁이 났다고 합니다만, 킹의 경우는 살짝 다른 것 같습니다. 킹의 애독자들은 아마도 ‘황천으로 데려다줄 마법열차가 파업 때문에 운행을 멈췄다!’ 이런 기분이 아니었을까요? 저 개인적으로는 롤러코스터가 중간에 멈춰 서버린 느낌이었으니까 말이지요.

자, 그러니 뱀은 거북이 될 수 없고 거북은 뱀이 될 수 없는 법입니다(물론 뱀목거북이라는 것도 있기는 합니다만 그래봐야 뱀보다는 짧으니까요.). 거북한테는 거북 나름의 고혹스러운 멋이 있고 뱀한테는 뱀만의 매력이 있겠지요. 스티븐 킹의 특기라면 역시 이 「다크 타워」의 ‘어두움’과 ‘잔혹함’, ‘묵직함’, ‘다크함’, ‘바닥 모를 암흑’ 등일 것입니다. 그것이 있어야만 스티븐 킹의 이름값을 한다고, 또 그것이야말로 스티븐 킹 팬들이(저 또한 그렇습니다만) 빠져나오지 못하는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야말로 라이트 판타지와 라이트 노벨이 전성기를 맞은 이 경박단소한 세계에서 ‘이거 무거운걸!’ 하는 느낌이 드는 고딕 판타지의 세계가 우뚝 서도록 하는 힘일 것입니다. 마치 태곳적에 세워진 거석 같다는 느낌, ‘스티븐 킹, 과연 대단해!’ 하는 느낌이 들도록 말입니다.

솔직히 말하건대 읽다보면 안절부절못하게 하는 부분(말하자면 ‘이렇게 바쁜 와중에 그딴 여자 따윈 내버려두란 말이야!’라거나, ‘가재괴물이 몰려오잖아, 빨리 바닷가로 돌아가란 말이야!’ 이런 대목 말입니다.), 조마조마하게 하는 부분, 아슬아슬한 부분이 무척이나 많습니다. 그러한 느낌 자체가 곧 스티븐 킹의 솜씨에 걸려들었다는 증거이지요. 그러다보니 저는 무엇보다도 가재 괴물이 제일 마음에 들더군요. 그때부터 줄곧 ‘대드, 어, 첨?’이라고 혼자 중얼거리는 기분이 들 정도이니까요. 바로 그 순간이야말로 ‘작가 스티븐 킹이 지닌 무서운 저력’을 깨닫게 되는 곳일 겁니다. 

또한 ‘라이트’니 ‘다크’니 따지기 전에 ‘사실 판타지란 바로 이런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곳이기도 하고요. ‘어디에도 없는 세계’를 오로지 작가의 힘 하나로 생생하게 존재하도록 하는 것, 독자에게 ‘틀림없이 있다’고 느끼도록 하는 것 말입니다. 「다크 타워」에서는 현실 세계와 기괴한 평행 세계가 뒤얽힌 가운데 치밀하게 짜놓은 수수께끼를 하나하나 풀어나가는 느낌이 듭니다. 그러나 저는 그 거대한 이야기 자체보다는 역시 ‘저 가재 괴물 맛있을까?’라거나 ‘으악, 뎅겅 잘린 형의 머리가 굴러오다니!’ 같은 느낌이 훨씬 더 강력하게 다가옵니다. ‘제발 부탁이야, 그만 됐으니까 이제 그만 잠 좀 자게 해줘!’라고나 할까요. 그러한 느낌 속에서 어디에도 없는 세계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이와 함께 우리가 사는 이 현실로부터 멀리 있으리라 여겼던 또 하나의 생생하고 기괴한 세계가 꿈틀거리기 시작합니다. 틀림없이 이곳이 아니라 ‘그곳’에 있는 세계가 말입니다. 그 세계는 또렷해지면 또렷해질수록 우리가 사는 이 현실을 공격하고, 소외시키고, 침식하며, 때로는 우리로 하여금 아예 잊도록 합니다. 결국에는 다크하든 아니든 간에 그러한 힘이 있는 판타지만이 ‘문학’에는 없을지도 모르는 이야기의 힘을 지니며, 그러한 힘이 없는 판타지는 한 번 읽고 나면 까맣게 잊어버리는 오락용 읽을거리로 업신여김을 당한다는 생각도 드는군요.

스티븐 킹이 만들어낸 다크 타워의 세계는 꽤나 감질나면서도 감칠 맛이 나고, 한편으로는 어딘가 갑갑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일단 빠지고 나면 정말이지 굉장하지요. 발을 빼기가 힘들다고나 할까요. 끌어당기는 힘이 어찌나 강력한지, 과연 ‘제왕 킹’으로 불릴 만합니다. 하지만 저는 다크 타워 시리즈를 읽으면서 ‘그래, 역시 킹은 순진한 사람이야.’라는 이상한 생각이 가장 많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터무니없는 소리로 들릴지도 모릅니다만, 결국 판타지란 ‘이상향’을 향한 불멸의 동경으로부터, 또 ‘여기가 아닌 이상한 세계’, ‘다른 세계’를 향한 순수한 동경으로부터 출발하지 않는 한 읽는 이를 사로잡고 움직이도록 하는 힘을 지니지 못합니다. 머리를 써서 궁리해낸 이공간은 대개 현실의 따분한 은유에 지나지 않으니까요. 스티븐 킹은 분명히 제왕인지도 모르지만, 한편으로는 아직까지도 꿈꾸는 소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은 귀엽기까지 하더군요. 그러고 보니 『그린 마일』을 읽을 당시에도 ‘아, 이 사람 참 천진하구나.’ 하는 감상을 받았던 것도 같습니다. 스티븐 킹이 이처럼 순수한 동경을 간직하는 한 아무리 다크한 판타지라고 해도, 말하자면 아무리 기괴하고 무겁고 읽기 벅찬 판타지라고 해도, 아니, 오히려 그러하면 그러할수록 킹만이 지닌 색다른 ‘꿈의 힘’으로써, 지금 이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는 모든 독자들을 끌어들일 것이라고 믿습니다.

(작성일: 2005년 12월)

덧글

  • 키르난 2015/01/08 17:27 #

    구리모토 카오루가 누군지 떠오르지 않아 검색했는데... 보고서 알았습니다. 핫핫핫; 서평 쓰는 것이 지당해보이네요. 그 작품 읽고서 받았던 충격이 아련합니다..(먼산)
  • 산왕 2015/01/19 15:12 #

    가장 긴 걸 쓰다보면 결국 끝을 못내게 되는건가 싶기도 하고요 ( ");
  • Megane 2015/01/09 01:07 #

    제 기준에서는 [자, 이제 호러작가를 보여주세요?]수준인지라 뭐...
    두 분 다 라이트하시면서 새삼스럽게...(퍼버벅!!!)
  • 산왕 2015/01/19 15:13 #

    orz....스티븐 킹도 딱히 호러작가란 느낌은 없네요 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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