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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반게리온: 큐 감상 by 산왕

('에반게리온: 큐' 및 '엔드오브에반게리온'의 내용이 나옵니다. 스포일러에 신경쓰는 분이라면 두 작품을 본 후에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서/파에서 한없이 위로 끌어올렸던 것을 큐에서 바닥까지 떨어뜨렸다. 여기까지는 TV시리즈에서 극장판 2부작에 이르는 구 에반게리온과 같다. 하지만 이번에는 마지막의 마지막에 손을 내밀어 줬다.


전해듣기로 안노 히데아키 감독은 신 극장판 4부작을 만들기 전 사석에서 자신의 열렬 팬인 한 작가(심지어 에반게리온의 캐릭터를 소재로 자전적 소설을 썼을 정도의)에게 신 극장판 제작에 나서는 심정을 이야기했다고 한다. 과거에 대한 아쉬움과 완성된 이야기에 대한 의지.


안노는 구 에바와 에바가 끼친 영향에 대해 일종의 후회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신 극장판에서는 정말 제대로 이야기를 맺음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었다.


여기에 대해서는 자신이 만들어낸 하나의 흐름을 끊고 새로운 흐름을 만들겠다거나, 이야기로서의 완성도를 높이겠다는 해석도 가능하겠는데 개인적으로는 구 에바가 '끝'이 아닌 계속이었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 서/파가 TV시리즈의 재구성이었다면 큐는 극장판 2부작의 재구성이었고, '계속'되는 이야기가 신 극장판 완결편에서 이어지는 거다.


안노가 만든 실사 영화는 생각보다 괜찮았다. 본인이 공부도 많이 했을 것이다. 신 극장판 3부작에는 셀프 패러디, 셀프 오마쥬(?) 뿐만 아니라 기존 명작 영화들에서 차용한 장면도 많이 보인다. TV시리즈와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에서 의아함을 자아내고 머리를 뒤흔들었던 연출은 이번엔 세련되게, 절제되어 나온다.


신지의 정신적 공황 신도 그랬고, 카오루와 싱크로를 맞추는 과정도 그랬다. 의미심장하게 연출하는 것이나 고유명사를 늘어놓는 것은 에바의 아이덴티티니 고민하지 말고 수용하면 된다.


안노 감독은 나이가 들며 공부도 많이 했고, 생각도 정리가 되었을 터이며 과거에 대한 후회를 만회할 수 있는 기회도 생겼다. 서/파를 만들었다. TV시리즈에서 폭주했던 것을 정리된 이야기로 풀어줬다. 멋지게 레이를 구해낸 신지에게 구 에바를 본 우리나, 새롭게 에바를 본 이들도 박수를 보냈을 거다.


그리고 큐.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을 처음 봤을 때가 생각난다. 대학교 2학년 시절이었던가?


서울의 한 대학교에서 일본에서 공수해왔다는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 캠판의 복제 비디오테입으로 상영회를 한다는 공지를 냈다. 대구에서 친구들을 불러모아 5명이 함께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을 보러 갔다.


흐릿하게 잘 안 보이는 화면에 소리도 잘 안들리는 걸 꾸역꾸역 봤다. 그리고 아스카의 마지막 대사.


안 들렸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 봤다.


"아스카가 뭐라고 한 거죠?"


"기분 나빠"


"네?"


"기분 나쁘다고요"


"죄송합니다"


"아니, 아스카가 한 말이 기분 나쁘다는 말이었다고요"


..네?


큐가 거기서 끝나는 건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황폐해진 대지에서 신지를 일독하고 떠나려던 아스카는 기분 나쁘지만 버리지 않고 신지에게 손을 내밀어 줬다. 당연히 신지는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억지로 일으켜 손을 잡고 끌고 가 주는 아스카.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의 '계속'이며 수정이다. 포스 임팩트는 일어나지 않았고 아스카는 다른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신지를 억지로 데려간다.  나는 여기서 만족하고 흐뭇한 웃음을 짓게 된다.


완결편에서는 사람들 사이로 돌아가서도 계속 방황하는 신지를 두들기고 흔들어서 정신차리게 해 주리라 믿는다. 그게 아스카니까.

뭐, 요즘 식으로 드립으로 마무리하자면 에바 큐의 마지막 장면은 이거다. 티격태격하고 늘 아들 괴롭히는 게 맘에 안들어 싸고도는 시어머니(레이) 앞에서 아들 손을 잡고 억지로 데려가버리는 도둑고양이 이야기.


안노 감독도 결혼한 뒤에는 모성환상보다는 여자친구 쪽 손을 '확실하게' 들어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정도로 정리하면 되겠다.

덧) 오늘은 에바 큐 6회차 관람을 하러 갑니다. 나중에 저보다 더 많이 본 이글루스 이웃 분이 계시면 소박한 선물을 드릴까 생각중입니다.



덧글

  • mithrandir 2013/04/26 12:30 #

    아마 일본 웹 어딘가에서 봤던 거 같은데, 누군가 그러더군요. 가장 암울한 것 같이 보여도, 구극장판 포함해서 마지막 장면이 정말 개운하게 끝난 건 이번 Q가 처음이라구요. 저도 어느 정도 공감하는 편입니다.
  • 까날 2013/04/26 13:04 #

    우리들의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야........

    그런데 역시 세 번 쯤 보니까....... 신지한테 설명을 안 해줘도 너무 안 해주네요....
  • 레이트 2013/04/26 13:05 #

    정보 없이 봤다면 좀 뭐라고 할 지도 몰랐겠지만 조금 아는 상태로 보니까 그냥 웃음이 실실 나올 정도로 재미있더군요. 노틸러스 음악 사용이라던가 구 TV판을 떠올리게 하는 카오루의 대사라던가. 개인적으로 신극장판의 주제는 좀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이번 Q로 확실해진게 소년이 어른이 되는, 어른아ㅣ 되지 못한 이들에게 어른이 되라고 하는 것을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파에서 겐도의 어른이 되라, 신지. 라고 하는 대사가 그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 Hineo 2013/04/26 13:21 #

    나중에 거신병 도쿄에 나타나다 부분을 따로 봤는데

    ...수입사측이 이거 같이 안 보낸게 안타까울 정도로 아쉬웠습니다. 원래 일본 개봉할때처럼 이걸 먼저 틀고 그 다음 Q를 본다면 그나마 '멘붕'까지는 갔을텐데(...)
  • Niveus 2013/04/26 16:40 #

    2회차 봤는데 3회차는 가서 볼 생각이 그다지 들지 않더군요 -_-;;;
    왜 멘붕이라는건지 이게 에바잖아? 소리밖에 안나오는데;;;
  • 수류아 2013/04/26 16:46 # 삭제

    저는 신지가 엔드오브에바에서 아스카 공략에 실패하고 뉴게임, 서와 파를 통해 레이를 공략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다시 뉴게임을 시도하다 실패한 것이 큐라고 보고 있습니다. 공략법을 자신있게 소개했던 친구 카오루 군은 별 도움이 안 되었지요. 뭐, 친구란 게 다 그렇습니다만....(...)
  • 잠본이 2013/04/27 15:43 #

    카오루 "어라, 이 루트가 아닌가벼. 야 난 치트 걸려서 먼저 퇴장한다. 잘해봐라."
    신지 "야이잣샤"
  • 키르난 2013/04/26 17:12 #

    보고 나와서는 다음편 내놔! 라는 생각과 신지 이 녀석! 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왔다갔다 하고 있었는데, 다른 일 하면서 내내 짚어 보니 참 신지가 안되었더라고요. 아니, 그러니까 그 앞에서 몇 번 설명만 제대로 해주었어도 저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텐데 싶었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같이 앉아 놓고는 혼자만 멘탈 붕괴겪고 있던 카오루는 참....;;;
  • 2013/04/26 22:18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아야카 2013/04/27 02:51 #

    폭주의 EOE였죠. 마무리는 과연 어떨런지...
  • 코로로 2013/04/27 03:03 #

    약 20년간 에반게리온만 고찰한 막장 영감쟁이들은 10년은 더 해먹을수 있겠다고 환호성을 질렀고, 젊은이들은 욕을 하고 말고 이전에 이게 대체 뭔지를 모르겠어서 어떤 표정을 해야 할지 몰라서 웃었다고 하며, 그런 상황을 조금 멀리서 지켜보던 사람들은 "안노 결혼 해서 생활도 생기고 정신을 차린줄 알았는데 또 안좋은 병이 도졌구나..."라고 했다고 해서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는데,

    보고 오니깐...뭐...이건...뭐...

    상기의 설명 정확하더군요.
  • skel 2013/04/27 10:48 #

    뭐 다음 극장판도 국내 개봉되면 보겠습니다만 Q는 이래저래 미묘...'_'
  • 잠본이 2013/04/27 15:44 #

    아스카는 좋은 츤데레였습니다.
    근데 요래놓고 다음편에서 뭘 어떻게 끝내겠다는 건지 모르겠음(...)
  • Dr K 2013/04/27 23:14 #

    오호 뭔가 이해가 잘가는 설명이군요. 레이가 엄마 포지션이고 아스카가 여친포지션이라 오호라 ㅋㅋㅋㅋ
  • 잠본이 2013/04/30 21:11 #

    사실 q에서의 레이 상태를 생각해보면 치매걸린 엄마 포지션이라 하는게 제일 정확(...)
  • Dr K 2013/05/01 22:02 #

    치매가 아니고 다른 개체다보니(.....)
  • Dktk 2013/05/09 20:57 # 삭제

    보러 가고는 싶은데 영 시간이 안나네요..ㅠ
    이번주엔 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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