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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스 대담 by 산왕

- 그제 쓴 글에서 아테네의 폭압에 대해서 언급했습니다.

아테네 출신인 투키디데스가 전하는 아테네 제국의 오만과 폭압을 상징하는 사건이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중립 폴리스'였던 멜로스를 파괴한 것인데, 종속적 동맹가입과 거액의 동맹 공납금을 강요하고 거부하자 쳐들어가 성인남자를 모두 죽이고 부녀자를 노예로 삼은 것으로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다'

는 투키디데스의 사고방식이 잘 드러난 부분이기도 합니다. 왜 동맹국들이 아테네에 등을 돌리는가? 왜 아테네는 몰락할 수 밖에 없었는가?

'그럴 만 했으니까'

그렇게 되었다는 거죠. 그렇게 중요한 폴리스도 아니었음에도 멜로스를 점령하는 과정을 무려 36장에 걸쳐 자세히 소개하고 멜로스에 파견된 아테네 사절이 나눈 대담도 보여주는데, 이 아테네 사절과 멜로스 대표의 소위 '멜로스 대담'은 투키디데스의 『역사』 중 백미로 꼽히곤 합니다.

"아테네 인 : 세상의 이치에 따르면 정의냐 아니냐 하는 것은 양자의 세력이 대등할 때 결정될 수 있는 것이오. 강자와 약자 사이에는 강자가 어떻게 큰 몫을 차지하며 약자가 어떻게 작은 양보로 위기를 모면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일 뿐이오.

멜로스 인 : 여러분이 정의를 도외시하고 오직 득실의 척도로 판단기준을 삼는다면 우리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데, 여러분에게 이익이라는 것은 곧 상호 간의 이익을 무위로 만드는 것 아니오. 생사의 위기에 처한 자에게 이치에 호소하고 정의에 호소하는 것을 허용하고, 또 그 호소에 일리가 있음을 인정하여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소. 그것이 당신들에게도 큰 이익이 될 것이오. 왜냐하면 귀국도 몰락하면 모든 나라의 보복을 받게 될 것이고, 당신들이 미래의 본보기가 될 날이 오고 말 것이기 때문이오.

아테네 인 : 지배자의 자리에서 몰락하는 날이 온다고 해도 우리는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소. 왜냐하면 스파르타 같이 남을 지배하고 군림하는 자는 두려운 존재가 못되나 피지배자가 반란을 일으켜 지배자를 타도하는 것이야말로 두려운 것이기 때문이오. 

우리가 이곳에 온 목적은 회담을 통해 우리의 지배권에 이익을 도모하고 아울러 그것이 여러분의 위기를 구하는 것임을 설명하기 위해서요.

멜로스 인 : 이해할 수 없소. 여러분이 우리의 지배자가 되는 이익은 알겠소. 하지만 여러분의 노예가 되는 것이 그에 못지않게 우리에게도 이익이 된다는 말씀이오?

아테네 인 : 그렇소. 왜냐하면 여러분은 최악의 상태에 빠지지 않고 종속국의 지위를 얻을 수 있으며, 우리는 여러분을 죽이지 않고 살려둠으로써 착취할 수 있기 때문이오.

멜로스 인 : 우리를 적이 아닌 우방으로 간주하여 평화와 중립을 유지한다는 조건을 받아들일 수 없단 말이오?

아테네 인 : 여러분의 증오를 사는 것은 우리에겐 조금도 염려될 일이 아니오. 오히려 여러분의 호의를 사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약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종속국들이 생각하지 않을가 염려되오. 증오를 받는 것은 강력한 지배자임을 보여주는 것이오.

멜로스 인 : 귀국과 아무 관련이 없는 우리의 경우와, 대부분이 귀국의 식민지이며 그중 몇몇이 반란을 일으켰다가 진압된 종속국의 경우는 각기 다른 도리로 다스려야 하지 않겠소.

아테네 인 : 도리를 말한다면 어느 경우든 내세울 도리는 있는 법이오. 그리고 독립을 지키는 자가 있으면 그자가 강하기 때문이라 생각되고, 우리가 그들을 공격하지 않으면 그들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라 생각될 것이오. 따라서 여러분이 우리에게 항복하면 판도를 넓힌다는 점을 떠나서 우리의 세력을 확인해주는 것이 되오.

멜로스 인 : 여러분의 논리에 따른다면 현재의 많은 중립 폴리스들은 어떻게 되겠소? 그들은 멜로스의 경우를 보고 언젠가는 자신의 폴리스에도 아테네인이 쳐들어갈 것이라 생각할 것이며, 그렇게 되면 여러분은 그들 전부와 싸울 수 밖에 없을 것이오. 그러면 현재의 적의 세력을 증대시키고 아직 적이 될 의사가 없는 나라들도 억지로 싸움에 휘말리게 할 것 아니겠소.

(조용히 살고있는 쿨게이를 때리지 말자는 주장에도 적용할 수 있는 논리죠(…))

아테네 인 : 내륙의 나라들에 대해서 우리는 걱정을 하지 않소.두려운 것은 여러분 같이 아직 복속하지 않은 섬의 주민들과 복속을 했으니 불만을 품고 있는 자들이오. 왜냐하면 이들은 무모한 계획에 사로잡혀 자신과 우리를 파멸의 위험에 몰아넣으려 하기 때문이오.

멜로스 인 : 그렇다면 여러분이 지배자의 자리를 잃지 않으려 하고, 또한 이미 노예가 된 자들이 지배자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그러한 위험을 무릅쓴다면 우리와 같이 아직 자유인인 자가 노예가 되기를 거부하고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겠소. 만약 저항하지 않는다면 비겁자라고 경멸받을 것이오.

아테네 인 : 아니오. 냉정하게 생각하면 그렇지 않소. 왜냐하면 지금 당신들은 대등한 상대와 명예와 용기를 겨루는 것이 아니라 압도적 강자 앞에서 후퇴하여 자신의 안전을 도모해야 할 입장에 있기 때문이오.

멜로스 인 : 그러나 승패는 반드시 수의 많고 적음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며 공평하게도 우연에 좌우되는 경우가 왕왕 있는 법이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항복하는 것은 절망을 자백하는 것을 의미하는 법. 그러나 싸운다면 싸우는 동안이라도 이길 수 있는 희망이 남아있는 것이오.

아테네 인 : 희망이란 사경에 이르렀을 때 한가닥 위안이 되는 것일 뿐. 그것도 여력이 남았을 때 희망에 매달리면 손해를 보더라도 파멸에 이르지는 않는 법이오. 그러나 수중에 있는 모든 것을 희망에 거는 자는 꿈이 깨진 후에야 희망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지만 그 본성을 깨달은 후 조심하려해도 그때는 이미 희망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소. 여러분은 힘이 미약한데다 기회는 단 한번뿐이니 그런 어리석은 지경에 이르지 않길 바라오. 또한 인력을 다하면 살아날 수 있을 것인데도 궁한 나머지 눈에 보이는 것에 희망을 걸지 않고 신탁이니 예언이니 하는 보이지 않는 것에 매달리는 어리석은 자들의 전철을 밟지 않기 바라오.

멜로스 인 : 귀국의 병력과 행운에 필적할 만한 조건을 갖지 않는 한 귀국과 싸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우리는 물론 알고 있소. 그러나 우리는 죄가 없고 당신들은 정의에 어긋나기 때문에 우리에게 신의 도움이 반드시 있을 것이라 믿고 있으며 부족한 병력은 스파르타와의 동맹에 의해 보충될 것이라 믿고 있소. 설혹 특별한 이유가 없다 하더라도 스파르타 인들은 같은 혈족이라는 인연과 염치를 중히 여기는 정신 때문에 반드시 지원군을 보낼 것이오. 따라서 여러분의 말과 같이 아무 근거없이 희망을 내세우고 있는 것이 아니란 말이오.

아테네 인 : 신의 도움을 말한다면 우리에게도 없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오. 왜냐하면 우리의 주장이나 행위도 인간이 신에 대해 품는 생각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고 인간사회의 욕구에 위배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오.

신에게서나 인간에게서나 강자는 약자를 지배하는 법이라고 우리는 생각하오. 따라서 이 법칙은 남에게 강요하기 위해서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니며 예로부터 존재하는 것을 우리가 처음으로 활용하는 것도 아니오. 이미 세상에 널리 통용되고 있는 것을 계승하여 미래에의 유산으로 남기기 위해 활용하는 것에 불과하오. 왜냐하면 당신들이나 다른 어떤 자들일지라도 우리와 같은 힘을 갖게 되면 반드시 우리와 같은 행동을 취하게 될 것이며, 따라서 이것이 진실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신의 도움이 없으리라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이오."

(앞뒤가 빠진 내용으로 전문은 아니고, 중간에 한사람이 말하는데 따로 문단을 적은 건 중략된 부분입니다)

- 항복을 요구하는 아테네의 최후 통첩에 대한 멜로스의 대답은

"7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멜로스에서 단 한순간도 자유를 박탈당할 수는 없다"

는 것이었고, 아테네의 침공이 시작됩니다. 기대하던 스파르타의 원군은 오지 않았고, 결국 무조건 항복하게 되어 그 뒤에는 위에 언급한 대로 모든 성인 남성을 죽이고 부녀자를 노예로 삼습니다.

훗날 아테네가 펠로폰네소스 동맹에 무릎을 꿇었을 때 많은 폴리스들이 아테네를 똑같이 다루자고 주장한 것이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었던 거죠.

- 흔히 하는 오해가 스파르타의 펠로폰네소스 동맹에 대항하여 아테네가 델로스 동맹을 만들었다!는 것이지만 펠로폰네소스 동맹과 델로스 동맹의 '동맹의 목표'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었죠. 펠로폰네소스 동맹이 스파르타가 '너무 많이' 갖게 된 영토와 노예들이 문제가 되면 평소 스파르타의 도움을 받던 동맹폴리스들이 도와주러 오는 시스템의 상호 군사원조 시스템으로 시작되어 동맹도시들의 식민시, 혈연시들의 참여로 확장되어 간 데 비해 델로스 동맹은 명목상으로는 페르시아에 대항한 범그리스 군사동맹으로 실질적으로는 아테네에 의한 무력지배였습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발발 이유 자체가 아테네의 폭압이 갈수록 심해지는데 스파르타가 전통적 '소극적 외교'전략을 고수하자

'스파르타 님들아 아테네 좀 혼내주삼 징징'

거리는 폴리스들이 늘어나서 어쩔 수 없이 스파르타가 일어선 것이라. 오히려 느슨한 동맹이었던 펠레폰네소스 동맹이 델로스 동맹에 대항해 재조직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중간에 언급한 것에 대한 부연설명을 자꾸 하다보면 이야기가 끝으로 나아가질 못하니 다음엔 소크라테스 재판에 대해 적고 이야기를 끝 내야겠군요. 꼭.


덧) 델로스 동맹 당시의 아테네의 동맹공납금 수금에 대해선 『원피스』의 아론제국의 세금 수금을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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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친한척 2010/04/19 12:28 #

    국제정치학 쪽에서는 저 대담을 아테네 인의 현실주의 vs 멜로스 인의 이상주의로 대입하여 국제사회의 아나키를 보여주는 가장 적절한 사례로 인용하곤 하지요.... OTL.
  • sonnet 2010/04/19 12:42 #

    고려대의 강성학 교수가 한국은 강대국을 상대로 객기부리다가 멸망한 멜로스인의 전철을 따라선 결코 안된다고 강력히 주장하지요. 아테네가 나중에 망했지만, 그랬다고 멜로스가 재건된 것도 아니고 망한 건 어디까지나 망한 것으로 끝난 거라고.
    약소국은 당면한 서바이벌이 가장 중요한 과제란 걸 한시도 잊어선 안된다고.
  • 산왕 2010/04/19 13:09 #

    이라크=멜로스 로 대입되는 걸까요 orz....
  • 2010/04/19 12:37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산왕 2010/04/19 13:07 #

    헉 orz.....처음 가입할 때 도박 음란 이런 거 제외했었는데 금융도 제외할 수 있나 봐ㅓ야겠군요. orz.....
  • nighthammer 2010/04/19 12:44 #

    근데 사실 펠로폰네소스 전쟁 이전에 양측이 붙었던 건 전쟁은 펠로폰네소스 동맹의 느슨함이 결정적인 원인이라...
    (메기라 - 코린토스와 싸우는데 우리가 불리해염. 도와줘요. 스파르타 - 둘다 우리 동맹이니 개입 안함. 메기라 - 히밤 그럼 우린 아테네에 붙겠음. 코린토스 - 헐, 저놈들 아테네한테 붙어먹는 치사한짓했음. 스파르타 핼프! 스파르타 - ㅇㅇ. 그럼 개입.)
    펠로폰네소스 전쟁도 마찬가지로 에피담로스에서 내분으로 아테네와 코린토스 양측에 헬프친 게 서로 투닥대다가 스파르타까지 끼어들어서 난장판된거기도 하죠. 뭐랄까.
  • 산왕 2010/04/21 11:39 #

    아테네인들이 비웃은 2왕제도도 좀 영향을 미쳤고, 좀 소극적이었던 게 사실이죠. 스파르타 형님들 나서주세요!라는 격문도 한번 소개해 봐야겠군요^^
  • 캡틴터틀 2010/04/19 12:48 #

    인과응보라는 것이군요.
  • 산왕 2010/04/21 11:40 #

    고대 그리스인의 관점대로 말하자면 '될 대로 되었다' ^^;;;
  • 들꽃향기 2010/04/19 12:49 #

    멜로스인의 대답에 대한 산왕님의 적절한 멘트

    "조용히 살고있는 쿨게이를 때리지 말자는 주장에도 적용할 수 있는 논리죠(…)"

    -> 왠지 매우 공감가는 말씀입니다. (응?)

    어쩌면 중국과 주변국의 조공외교체제라는 것은, 그런 국제사회에서의 '힘의 법칙'과, '나름의 정의'& '약소국의 내정적 자유' 간에서...그 시대에 맞는 타협점을 찾은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감히 첨언합니다. ㄷㄷ

    (사실 원대에 행성편입론에 대해서 고려 지식인들이 대응했던 논리 역시, 유교적 세계관과 조공체제에 따른 논리였으니깐요. 물론 로비도 많이 했지만. ㄷㄷ)
  • 산왕 2010/04/21 11:41 #

    저시절은 이집트에서 '우리가 세상의 중심이지, 변방 기록은 필요없다능' 페르시아에서 '우리가 세상의 중심이지' 그리스에서 '우리가 세상의 중심이지'였으니 꽤나 애매합니다 ㅎㅎ
  • Fedaykin 2010/04/19 14:02 #

    마키아벨리즘이 저때도 있었군요.

    '내놔' '시, 싫은데?' 퍽! '그럼 뒈지시던가'

    헐헐헐
  • 산왕 2010/04/21 11:44 #

    마키아벨리도 어차피 고전에서 차용한 것에 불과...한 건지도 모릅니다^^

    투키디데스를 읽고 '아테네 사절의 말이 다 맞는 말이잖아?!'라고 생각하는 마키아벨리..라거나^^;
  • 임용관 2010/05/08 17:26 # 삭제

    산왕님 정말 잘 읽었습니다.
    실례가 안된다면 이 내용을 퍼가도 되겠습니까?
    제가 지금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연재중이거든요.
    출처는 여기입니다. http://cafe.daum.net/shogun/9xm/6692
  • 산왕 2010/05/08 17:59 #

    출처만 밝혀주신다면 문제 없습니다^^;
  • 임용관 2010/05/09 06:29 # 삭제

    감사합니다^^ 편안한 휴일 되세요^^
  • 임용관 2010/05/09 21:03 # 삭제

    한 가지 궁금한게 있습니다. 아테네의 멜로스 공략이 기원전 427년으로 알고 있는데, 다른 자료에서는 기원전 416년으로 나오네요. 그렇다면 아테네가 멜로스를 두 번 공략했다는 것인가요? 고견을 부탁드립니다.
  • 산왕 2010/05/10 13:26 #

    멜로스 침공이 416년이고 427년은 마틸레네를 침공한 해로 알고 있습니다^^; 보통 함께 언급되는 사건이라 잘못 기입된 자료가 있는 것 아닐까요?
  • xucheng050 2010/06/10 23:10 # 삭제

    아테네인들은 왜 그들의 피지배자들이 자신들을 신뢰하기 보다 두려워하는 쪽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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