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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토리에』와 『아나바시스』 by 산왕

『히스토리에』1권 141P에서 인용. (C) 서울문화사
- 크세노폰의 전쟁회고록, 아니 종군일기라 해야할 『아나바시스』. 『히스토리에』(ヒストリエ) 1권에서 에우메네스가 서점 주인과 대화할 때 서점 주인이 "크세노폰의 『아나바시스』는 인기있는 책"이라는 말을 하는 부분입니다. 7권짜리로 나온 『아나바시스』는 크세노폰의 기록을 토대로 약간의 가필, 수정이 가해진 것으로 두루마리 7권 - 요즘 책으로 따지면 얇은 책 한 권이 나올 뿐이죠.

한국에도 완역본이 나와 있습니다. 백과사전에 '그리스어 교과서로 사용되지만 사료로서의 가치는 크지 않다'고 되어있는 게 억울했던지 번역한 분이 사료로서도 중요하고 문장도 미려하고 어쩌고 하며 칭찬하고 있지만 실제 읽어보니 역시 사서로서의 가치는 없어 보입니다.
(얼마 행군했고 뭐 먹었고 이런 내용이 주를 이루는데다 야만족에 대한 묘사도 '아마조네스의 창을 사용하는' 같은 식으로 헤로도토스보다는 호메로스에 가까워 보인달까요?)

- 아나바시스는 BC 401년 리디아의 태수 키루스가 형 아르타크세르크세스2세에 대해 일으킨 페르시아의 내전에 헬라스 세계의 다국적용병집단 만여명이 참전했다가 전투에서 키루스가 죽어버리자 고난과 역경을 뚫고 흑해 연안까지 후퇴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제목인 아나바시스는 흔히 '진군(進軍)기'로 번역되고 '(내륙으로) 올라가기'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만, 실제 내용은 초반에서만 진군을 다루고 있고 그 뒤로는 내내 후퇴만을 다루고 있는 것이죠.

크세노폰은 아테네 출신으로 총사령관 키루스가 죽고 페르시아의 음모에 의해 헬라스 용병단의 지휘관들마저 살해당하자 지휘관으로 나선 두 명 중 하나입니다. 다른 한사람은 퇴각중 병사해버리죠. 반년 넘게 생판 모르는 땅에서 후퇴하며 적대적인, 드물게 우호적인 각 지역의 야만인들, 페르시아군과 싸우며 약탈하고 후퇴해 결국 흑해연안에 도착하는 게 6권까지의 이야기입니다.

- 『히스토리에』에서 에우메네스는 결국 7권을 보지 못하고 노예로 팔려갔다가 긴긴 시간이 흐른 후 다시 집으로 돌아오죠. 고향, 칼디아로. 그리고 옛 집의 도서관터에서 주문해둔 채 못본 『아나바시스』7권을 발견합니다.

"이걸 못 보고 떠났단 말이지!"라며 책을 펴 들지만 불탄자리에서 형태만 유지하고 있던 두루마리 책은 부서져 내리고 맙니다. 결국 에우메네스는 『아나바시스』7권을 못 본 채 다시 고향(이라고 생각했던) 칼디아를 떠나게 되죠. 작가가 『아나바시스』를 등장시킨 것도, 마지막 7권에 저런 운명을 부여한 것도 『아나바시스』의 내용을 생각한다면 너무나 그럴듯 해서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 크세노폰은 퇴각 과정에서 다양한 음모론에 휘말리고 (실제 음모를 꾸미기도 합니다만) 각종 비난을 듣게 됩니다.

'거대한 군세를 유지한 채 파프라고니아나 터키 서해안에 식민 군사도시를 건설해 일대의 지배자가 되려 한다'거나

'거대한 군세로 동족인 헬라스 도시를 치려는 것'이라거나

'군사들을 선동해 해산하지 않으려 하게 한다' '군사들을 선동해 해산시키려 한다'는 상반된 비난까지 듣는 것이죠.

사실 '최초의 용병단'으로 부르기도 하는 '1만인'은 스파르타가 패권을 차지해 각 도시에 소수의 병사와 총독을 파견해 놓은 당시 그리스 상황에서 위협적인 것이긴 했습니다. 실제 그리스 도시를 공격할 뻔 한 위기가 수차례 있었고 자신이 간신히 막았다는 크세노폰의 기술이 있기도 하죠. 긴긴 퇴각과정에서 죽고 낙오하는 자가 속출해 결국 6000명이 되어 흑해에 도착했지만 이 숫자도 무시할 수 있는 숫자가 아니라 처리에 골머리를 앓던 스파르타에서는 이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내지 않고 헬라스 세계로 돌아오자마자 흑해를 건너 다시 페르시아로 쳐들어가는 원정대에 참여케 합니다.
(정확하게는 소아시아의 태수와 싸우기 위해 소아시아로 가는)

긴 시간 동안 계속 싸워온 이들은 전투의 스페셜리스트가 되어 있어 '진짜 군대', '직업 군인'처럼 되어 있었다죠. 이들이 다시 페르시아로 건너가 어떻게 되는지는 크세노폰이 부대에서 이탈해서인지 기록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아니, 스파르타의 원정군의 일부에 불과하게 되었으니까 딱히 중요하게 이들에 대해 기록할 이유가 없어지기도 합니다만.

- '천신만고끝에 그토록 염원하던 고향에 돌아왔지만 반겨주는 이 없이 바로 고향을 떠나야 하는' 7권의 결말. 에우메네스가 그 결말을 읽었다면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요? 적어도 『아나바시스』를 읽은 저는 불타버린 고향집 폐허에서 아나바시스 7권을 들고있는 에우메네스의 모습에 강한 충격과 슬픔을 느끼게 되는데요.

『아나바시스』에 관련한 에피소드는 에우메네스의 운명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1권에 『아나바시스』를 등장시킨 것은 우연이 아니었던 거죠. 에우메네스가 마지막권을 못 보고 떠나는 것도. 그리고 그 마지막권을 고향에 돌아와 펼치지만 책이 먼지가 되어버리는 것도. 무서운 작가입니다, 이와아키 히토시씨(岩明均).

- 이런 부분은 사실 소위 역덕후(역사덕후;)가 아니면, 『아나바시스』를 읽어본 사람이 아니면 알 수가 없는 부분이죠. 그런 의미에서 안그래도 심각한 만화인 『히스토리에』를 더 심각하게 보는 방법은 언급되는 사서나 역사적 사실을 찾아보는 것입니다만 '그래야 한다'는 게 아니라 저처럼 『히스토리에』가 너무나 좋아 좀 더 이해하고 좀 더 제대로 보고싶은 사람이 '원해서'하는 일일 뿐이니까요. 저런 걸 모르고 보셨더라도 충분히 재미있고 좋은 내용이었지 않습니까. 그렇죠?

핑백

  • 산왕의 건전성추구위원회 : 네이버에서 만화제목 검색하기 2008-10-13 14:03:08 #

    ... 하면 검색된 것 중 가장 위의 것이 '재미있다길래 다 받았다' 군요. - 반쯤은 농담입니다만, 위에 100이면 99라고 한 건 '히스토리에'를 검색하면 제가 작성한 히스토리에와 아나바시스가 1면 제일 위에 뜨기 때문입니다. 이와아키씨가 이걸 보더라도 '이런 오타쿠녀석이!'라며 웃을 수 있겠죠 orz 아래쪽에는 스캔해서 잔뜩 올려둔 곳도 있는 ... more

  • 11th fear : 에우메네스와 만화『히스토리에』 2009-05-31 22:36:25 #

    ... http://redoctobor.egloos.com/4374899 (붉은10월님 블로그)http://sanwang78.egloos.com/1816271 (산왕님 블로그)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비서였던 에우메네스(BC362?~BC316)는, 그 이름을 빼면 당대 역사를 개괄할 수 없 ... more

덧글

  • SuperDuper 2008/09/29 15:37 #

    아무튼 빨리 5권 좀 국내에 ;ㅁ;
  • 산왕 2008/10/12 21:26 #

    정말 언제 나올런지 ㅠㅠ
  • 功名誰復論 2008/09/29 16:48 #

    역시 마니악이 진리입니다.
  • 산왕 2008/10/12 21:26 #

    알고보면 더 재밌다! 랄까요^^
  • JOSH 2008/09/29 18:58 #

    알아보는 사람도 정상은 아니다는 진리
  • 산왕 2008/10/12 21:25 #

    .......
  • 번동아제 2008/09/29 19:35 #

    저 아나바시스 말고 알렉산더와 관련 있는 아나바시스는 어디 구할 곳이 없는지...
  • 산왕 2008/10/12 21:25 #

    알렉산더와 관련있는 아나바시스란 뭘 가리키시는 건가요? 일단 아나바시스에 ™가 붙을 정도의 것은 저것입니다^^;
  • 잠본이 2008/09/29 22:07 #

    아는 만큼 보인다는 진리
  • 산왕 2008/10/12 21:25 #

    그러게 말입니다 -0-
  • 푸른별빛 2008/09/29 23:38 #

    그 책이 정말 있는 책인가 궁금했었는데 진짜 있는 거였군요. 시험 끝나면 한 번 봐야될 듯...그런데 히스토리에 다음 권은 언제쯤 나올까요-_-
  • 산왕 2008/10/12 21:25 #

    연재는 꾸준히 하고있는데 왜 단행본이 안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ㅠㅠ
  • 파란혜성 2008/09/30 00:17 #

    히스토리에 ㅎㅎ 다음권 기대되네요. 유익한 역사적 사실 감사합니다.
  • 산왕 2008/10/12 21:24 #

    단행본 두권 이상 나올 연재는 되어 있을텐데 단행본이 안나오고 있네요^^;
  • 나디르Khan★ 2008/09/30 00:41 #

    정말 히스토리에덕후시군요. 덕분에 좋은 팁 알고 갑니다. 세상은 덕후가 개선한다!!!!
  • 산왕 2008/10/12 21:24 #

    히스토리에덕후라기보다 히스토리덕후랄까요^^;
  • 홍차도둑 2008/09/30 00:53 #

    오오, 좋은 내용입니다. 히스토리에를 보는데 하나의 즐거움을 안내해 주시는 군요. 감사합니다 ^^
  • 산왕 2008/10/12 21:24 #

    이런 세심한 부분에 대해 자주 적어보려고 하는데 생각대로 안되는군요^^;
  • 렉시즈 2008/09/30 08:19 #

    아나바시스 저 책 지금도 나오나요? 제가 고등학교 다닐 쯤엔가도 정말 어렵게 어렵게 구했었는데...히스토리에 라는 책은 본 적이 없지만 산왕님이 소개하신 부분만 보아도 재미있어보입니다.
  • 산왕 2008/10/12 21:23 #

    도서관 등지에선 적당히 구할 수 있더군요^^; 살 수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 HENRY 2008/09/30 10:04 #

    흠 책의 내용을 이용하여 극중의 주인공의 여정과 교차되는 의미를 부여하고 나아가 극의 전개방향을 시사하는 방식이 꽤 흥미롭군요. 이런 건 소설이나 영화에서는 보았어도 만화에서 그 같은 방법이 사용되는 건 꽤 흥리보군요. (아니 이런 방식이 이미 적지 ㅇ낳게 사용되었을런 지 몰라도제가 모르고 있었을 수도)

    여담으로 덧붙이지만 본문과 전혀 상관 없는 이야기입니단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기 전 CIA에서 망명 이라크인들을 중심으로 조직한 일군의 부대를 훈련시켜 이라크 내부에서 파괴 교란 사보타쥐 주요 인물 신상 파악 매수를 통해 본격적인 군사작전의 여건을 조성하려는 계획을 수립.진행했는 데 그 공작의 암호명이 아나바시스였습니다. ( 정말 알아도 별 도움 안 되는 이야기만.. OTL)
  • 산왕 2008/10/12 21:23 #

    실패하고 이라크인들이 우르르 도망나올 거라고 예측한 작명인가 보군요(.....)
  • YaWaRa군 2008/09/30 11:16 #

    역사만화는 아무나 그리는게 아니라는 것을 최근 들어 느끼는 중입니다. 최근 읽은 만화는 김진태의 '사또 인 다 하우스' ^^
  • 산왕 2008/10/12 21:22 #

    동감입니다^^
  • mycogito 2008/09/30 15:20 # 삭제

    히스토리에 너무 좋아요 @.@
  • 산왕 2008/10/12 21:22 #

    저도요^^
  • 파에톤 2008/10/02 00:37 #

    우와.. 그냥 지나가는 것처럼 말해놓고 저런 연관성을 지어뒀군요. 멋지네요.
  • 산왕 2008/10/12 21:21 #

    보면 볼수록 새로움을 느끼고 놀라게 되는 작품입니다^^
  • 나인볼 2008/10/07 20:39 #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건 이런 경우로군요. 좋은 걸 알았습니다. ^^
  • 산왕 2008/10/12 21:21 #

    ^^; 몰라도 되는 부분이죠, 뭐; 하하;
  • magazz 2008/11/05 20:05 # 삭제

    대체 5권 언제나올까요 기다리다가
    죽어버리겟음
  • 산왕 2008/11/08 04:18 #

    일본에선 올 연말이나 내년 초에는 '확실하게' 나옵니다. 단행본 작업에 돌입했거든요^^
  • 2009/05/28 09:34 #

    이제 나왔네요 덜덜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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