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즈 저택의 죽음』- 유쾌한 포와로!?
아마도 유일하게 ACL과의 정식 계약을 통해 아가사 크리스티 여사의 책을 출간한 것으로 추정되는 황금가지 판으로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 예쓰24를 뒤져보니 해문, 동서 등 해적판인지 아닌지 알쏭달쏭한 판본만 나오고 황금가지판은 나오지 않아 링크시키지 않고 그냥 적겠습니다.

- 일단 서문이 눈길을 끕니다. 크리스티 여사의 손자가 적어준 서문에는

'한국에 할머니의 책이 정식 출간되게 되어 기쁘다'거나 '이번 정식 출간을 통해 새로운 세대의 팬층이 생겨나면 좋겠다'는

소박한 희망이 담겨 있습니다만 저 바람이 이뤄졌는지는 알 수가 없군요 :b

- 번역을 놓고 말이 많은 것 같습니다만 포와로 특유의 말버릇들을 원어발음 그대로 적어버린 번역이 의외로 마음에 들더군요. 이 부분은 사람에 따라 느낌이 많이 다를 것 같긴 합니다.

- 최근 가장 재미있게 본 애니메이션을 꼽으라면 역시 투니버스에서 수입 방영한 NHK의

『아가사 크리스티의 명탐정 포와로와 미스 마플』

이라고 해야겠습니다. 약간 저연령층 대상인 듯한 느낌이지만 '트릭'보다는 '인간성에 대한 이해와 통찰'을 강조하는 것이 고전에 대한 향수를 느끼게 하면서 포와로와 마플을 다시 읽고 싶다는 마음을 불러 일으키더군요. 시대의 조류에 맞게 오리지날 캐릭터로 등장한 마플의 조카손녀이자 포와로의 조수인 16세 소녀야 뭐 아무래도 좋은 것이고; 중년 포와로에 비해 청년으로 등장하는 헤이스팅스를 '헤이스팅스군'이라고 부르는 포와로에겐 뭔가 애매한 느낌이 들지만 그런 점을 차치하고서라도 즐겁게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갑자기 아가사 크리스티의 책을 찾게 되었는데 다행히 근처 K도서관에 10여권이 비치되어 있더군요.

그래서 가장 먼저 고른 게 바로 『스타일즈 저택의 죽음』이었습니다 :b 가장 최근(이래도 몇 년 전이지만;)에 읽은 여사의 책이 마침 『커튼』이었던 게 생각나서(포와로의 마지막 사건입니다. 『커튼』에서 사망해버리죠;) 그 시작인(헤이스팅스와 함께 첫 등장하는) 『스타일즈 저택의 죽음』을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죠.
(두번째로 고른 건 『0시를 향하여』 입니다)

- 딕슨 카가 '독자와 증거를 공유하지 않는다!'고 비난했던 것이 완전히 틀린 것만은 아니라 크리스티 여사의 책들은 탐정과 경쟁해 추리대결을 해보려는 전통적 의미의 미스테리 팬들에겐 조금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 있는 게 많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나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을 들지 않더라도 이 『스타일즈 저택의 죽음』만 해도 포와로는 증거를 숨길 뿐이고 헤이스팅스의 시점을 따라가는 우리는 늘 뒤통수를 맞을 수 밖에 없죠 :b

- 그런 한편 스타일즈~의 경우 아가사 여사의 작품 중 '범인찾기'(논리적 증거와 논증을 수반하지 않은 단순한 범인찍기 :b)는 가장 쉬운 작품이기도 한데요. 그 이유는 글의 서두에 너무나 중요한, 하지만 쉽게 흘려넘길 수 있는 이야기를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죠. 그 부분을 주의깊게 읽은 사람이라면 용의자가 두 사람 정도로 좁혀져서 너무나 쉽게 범인(중 하나)를 밝혀낼 수 있습니다. 포와로는 언제나 가장 마지막에 설명을 해주지만 헤이스팅스는 일단 '사건 종결 후에 서술'하는 형식인지라 은연중에 서두에서 답을 제시하고 시작해버린 셈이랄까요? :b

아니 혹시 제 글을 보고 다시 읽으려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니 이정도만 적어 두겠습니다만, 읽어보시려는 분은 서두를 주의깊게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b

- 후기 작품군에서 잘난척하고 회색 뇌세포를 너무 자주 언급하고(...) 회의적인 포와로를 보셨던 분은 유쾌한 아저씨 포와로에게 어리둥절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b 아니메 『아가사 크리스티의 명탐정 포와로와 미스 마플』에 등장하는 포와로는 초기의 포와로에 가깝다고 해도 좋겠지요. 가족의 화목에도 신경써서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어준 후(범인 빼고;) '다들 미녀를 잡았는데 나만 솔로야' 라고 한탄하는(...) 헤이스팅스에게

'우리에게도 좋은 날이 올것'

이라며 웃는 맘좋은 아저씨 :b 포와로 맞습니다. 네. 하하;

- 아가사 크리스티를 읽을 때 출간순으로, 혹은 무작위로 읽는 것도 좋겠지만 시리즈 별로 순서대로 읽는 것도 좋은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포와로를 읽고 싶으시다면 그 시작인 『스타일즈 저택의 죽음』부터 읽어보시는 게 어떨까요 :b

멋진 아가씨에게 한눈에 반해 프로포즈했다 차이고는 '나만 솔로야 ㅠ.ㅠ'라고 우는 헤이스팅스를 '우리에게도 좋은 날이 올거야!'라고 달래는 포와로. 절로 웃음이 날 것 같지 않습니까? :b
by 산왕 | 2008/05/14 20:07 | 책에 대한 건전한 이야기들 | 트랙백 | 덧글(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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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루아™ at 2008/05/14 20:26
아..포스팅을 읽으니 다시 한번 읽고 싶어 집니다^^
Commented by 시오、 at 2008/05/14 21:05
저도 다시 읽고싶네요... 그것도 새판본으로. 그리고 애니가 보고싶습니다. "투니버스에서 수입 방영"이라.. 좀 찾아보면 어떻게 볼 수 있으려나요...^^;(VOD 서비스라던가 DVD라던가...)
Commented by 잠본이 at 2008/05/14 21:21
결국 우리의 헤이스팅스 대위는 (퇴역했지만) '골프장 살인사건'에서 용감하고 어여쁜 곡예사 아가씨와 눈이 맞아 결혼합니다. (이후 '빅 포'에서도 두사람 금슬이 아주 좋은 걸로 나오죠)

......그에 비해 마음좋게 위로해준 에르큘영감님은 죽을 때까지 (어흐흑)
Commented by 露彬 at 2008/05/14 21:23
황금가지판이 정식 라이센스 본이고, 나머지 것들은 과거에 나온 해적판들입니다. 저작권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모르겠으나, 이전에 나왔던 판본들은(해문 등등) 오타수정만 해서 책을 새로 낸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피박 쓰고 있는게 황금가지;;; 일단 해적판들은 크리스티 작품을 거의 대부분 출간했었지만, 황금가지는 한창 출간중이고요(현재 53권). 헌책도 아닌 새책에다 기존에 이미 익숙해진 것이 해적판들이라서 해적판쪽에 손을 들어주는 사람들이 많더군요.

저는 황금가지 걸로만 계속 읽고 있습니다만... 황금가지에서는 크리스티의 모든 저작들(추리 포함해서 로맨스 등등)을 출간할 계획이라고 하니 앞으로도 그쪽만 읽을 생각입니다.
Commented by 찬물녹차 at 2008/05/14 21:26
露彬 / 맙소사. 황금가지 외에는 전부 해적판이었습니까? 해문판 전집을 모은 입장에서는 참 쓴웃음이 나오는 소식이군요.

산왕 / 비교적 최근에 나온 그 애니는 저도 좋아합니다. 그런데 이게 아직 읽지 않은 소설이 에피소드로 나오면 곤란해서 '포와로랑 마플 나오는 걸 다 읽으면 그만 두자.'라고 결심한지가 2년 째인데 아직도 다 읽지를 못했습니다. OTL
Commented by reina at 2008/05/14 21:52
오- 전부 해적판이었다니.....!! 조금 놀라운데요.
그리고 NHK의 애니..는 꼭 찾아봐야겠어요. 우흣.
Commented by Reality at 2008/05/14 22:15
저는 황금가지판의 1권인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사 놓고 너무 방대한 나머지 나머지 권들을 어떻게 다 사모을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orz... 한번에 왕창 사기에는 너무 많고 그렇다고 찔끔찔끔 사자니 왕창 살때에 비해 돈이 더 들고...
Commented by realove at 2008/05/15 08:25
투니버스에서 그런 애니메이션도 해줬나요? 잉 몰랐는데... 꼭 봐야겠어요. 아가사는 작년에 반정도 봤는데, 이번 여름에 마저 또 봐야겠어요.
Commented by 브로트니아 at 2008/05/15 11:07
흐음....
Commented by 아즈라엘 at 2008/05/16 14:18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12 : 스타일스 저택의 괴사건' 황금가지판은 이렇게 되어있네요.
Commented by 영원제타 at 2008/05/16 21:42
해문판으로 30권 가까이 가지고 있는데 해적판이었다니… 의아앗 !
Commented by marlowe at 2008/05/19 15:31
포와로 시리즈를 읽을 때마다 가장 흐릿한 게 헤이스팅스입니다. 저만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홈즈의 왓슨같은 선명한 이미지가 없거든요. [나일강의 살인사건]에서는 무려 데이빗 니븐이 출연하는 데, 잘한 캐스팅인 지는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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