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왠지 킨다이치 시리즈 중에서 그렇게까지 잘 알려지진 않은(팔묘촌이나 옥문도, 이누카미..등에 비해서) 이 작품이 자주 회자된다 했더니 SMAP멤버 중 한 명이 킨다이치 역을 맡아 드라마로 만들어졌나 보더군요. 5~60년대 일본의 암울한 외부환경 하에서 노력하는 킨다이치의 모습이 제대로 그려져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일본의 명탐정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들로 '아케치 코고로'와 '킨다이치 코우스케'가 있을 겁니다. 이 중 아케치 코고로의 경우, 작가생활 초반 본격파 추리물을 쓸 때의 란포에 의해 논리와 이성으로 무장한 명탐정으로 경찰 내부에서도 유명 - 킨다이치는 친한 경찰들 사이에서만 알려져 있는데 비해 아케치는 이름을 대면 누구나 아는 그런 탐정으로 묘사되곤 하죠 - 한 인물로 그려지지만 란포의 성향이 본격파에서 통속소설 - 환상문학 쪽으로 넘어가며 천재이자 매지션 같은 느낌으로 변모합니다. 최근 영화로 만들어진 란포지옥 - 단편 4편으로 이뤄진 - 에서는 란포가 상상한 지옥의 풍경을 여행하는 파우스트 같은 인물로 묘사되기도 했는데, 그가 변모함에 따라 그의 라이벌인 '괴도 20면상'도 모리어티 교수같은 느낌의 희대의 범죄자에서 인간 본연의 악한 성향의 구체화된 모습으로 변해가죠. 드라마 란포-R에선 괴도 20면상을 '누구에게나 악한 마음은 있고 그 마음이 깨어나는 순간 너는 20면상이 된다'는 식으로 재미있게 표현하기도 하더군요.
하지만 킨다이치 코우스케는 허름한 옷차림과 더벅머리가 특징이면서 초지일관 합리적으로 사건을 해결해보려고 노력하는 노력파 탐정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탐정만화 붐을 일으킨 소년탐정 킨다이치에서 초반 아케치와 킨다이치 중 누구의 손자로 설정할지를 두고 고민하다 결국 킨다이치를 선택하는 데에는 저런 이유도 작용했겠지요 :b
이 킨다이치가 활약하는 이야기는 이누카미가의 일족이 영화화되어 대히트한 후 드라마, 영화로 자주 만들어지고 있습니다.(상대적으로 아케치가 활약하는 건 수도 적고 마이너한 작품들이죠. 최근의 란포지옥도 추리영화는 전혀 아니었고, 어려운 영화더군요) 국내에는 순서대로 팔묘촌, 혼징 살인사건, 옥문도(카도카와 문고의 킨다이치 코우스케 파일 시리즈 발매 순서)가 나와 있어서 저것들부터 봤습니다만, 4번째로 나온 '악마가 와서 피리를 분다'부터는 국내발매 소식이 없기에 '킨다이치 시리즈가 별로 인기가 없나보다'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원서로 보고 나니 번역되어 나오지 않고 있는 이유가 인기가 없어서만은 아닌 듯 하더군요.
근친상간, 근친살해로 점철된 설정과 스토리. 아니, 이렇게 적으면 중요한 부분을 다 말해버리는 셈이 됩니다만; 한동안은 정식수입될 가능성이 없어보이니 괜찮겠지요(어이;) 상상도 못한 동기 하에 살인이 펼쳐지면서 단서도 없고 범인은 숨어있기에 킨다이치 코우스케도 힘겨워하지만 열악한 환경 하에서도 그는 열심히 노력합니다.
'셜록 홈즈'는 사건을 전해듣기 위해 전보를 받습니다만, 그런 시스템이 완전히 붕괴된 전후 일본에서 킨다이치 코우스케에게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는 전갈이 오는 건 '인편'을 통해서입니다. 고베에서 도쿄까지 가는 데는 이틀이 걸리죠. 도쿄에서 고베로, 다시 도쿄로 왔다갔다하는 코우스케는 자신이 없는 동안 다른 쪽에서 일어난 일을 며칠 지나서 인편으로 편지를 받아들고야 알게 됩니다.이런 열악한 상황에서 범인을 밝혀내는 데까지는 결국 성공하지만, 전작에서도 후작에서도 되풀이될, 그리고 소년탐정에서도 계속되는 공식, '살인을 마무리지은 범인은 범행이 발각되고 자살한다'가 이어집니다.
묘사되는 범죄의 동기가 '합법적으로 복수할 길이 없는 크나큰 원한'인 경우가 많고(소년탐정, 할아버지 탐정 모두) 그 원한을 풀기 위한 사적 제재가 마무리된 후에야 범인을 밝혀내고 그 범인이 자살해버리는 것은 독자에게 씁쓸한 뒷맛을 남기지 않게하기 위해서라고 이해는 합니다만, 너무 이 패턴이 반복되다보니 손자의 경우에는 '살인탐정'의 명성까지 얻게 되는 것이지요.
자세한 내용을 적기는 그렇고(궁금하신 분은 네이버 등지에 무수히 존재하는 드라마 감상을 보시면 되겠습니다;), 작품 설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천은당 사건'에 대해 적어볼까요?
작품에선 후생성 직원으로 위장한 범인이 천은당이란 보석상에 들어가 예방약이라 속여 청산가리를 먹이고는 금품을 훔쳐 달아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십 수명이 사망하고 4명만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고 적고 있죠. 보통 이건 요코미조 세이시(작가)가 지어낸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만, 실제 있었던 일에 기반한 것입니다. 1948년 1월 26일 제국은행 시이나마치 지점에 나타난 남자가 위와 똑같은 방식으로 청산가리를 먹여 12명을 살해하고 4명은 중상을 입었지만 살아나는 사건이 있었는데 그 사건을 약간 변형해 사용한 것이죠. 실제 사건의 범인은 잡혔으나 혐의를 부인한 채 사형판결을 받고 수감 중 사망해 지금까지도 '미결사건'이라는 인상을 주는 사건입니다.
스토리는 안 적는 대신 간략히 몇 가지 더 적어 두겠습니다.
- 옥문도에서의 킨다이치는 열심히 노력하지만 결국 범행을 막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것으로 묘사됩니다만, 이 악마가 와서~에선 그 자신이 범행을 불러일으키는 식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이 작품만 놓고 본다면 살인탐정이라는 손자를 욕할 건덕지가 없는 셈이죠;
- 상황 자체에서 범인을 지목하기는 어렵지만 작품 자체가 킨다이치에게 이야기를 듣고 나중에 적는다는 형식이기에 중간중간 작가의 논평 '이 부분에서 킨다이치가 후회했다'거나 '이 부분에서 이렇게 했으면 범행을 막을 수 있었을 것' 같은 이야기들이 나와 독자의 추리를 돕고 있습니다. 방향을 잘 맞추고 제대로 따라간다면 범인을 지목해내기는 그리 어렵지 않은 셈이죠. 탐정보다 독자에게 더 많은 힌트가 주어지고 있으니까요 :b
- 범인을 확정짓는 증거로 제시되는 게 산음 지방에서도 어느 지방까지는 '바시'로 발음하지만 산음 지방의 어느 지방은 '하시'로 발음하니 너의 출신지는 거기다! 같은 식이라 우리나라에서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도 안 나오는 이유로 작용했을 겁니다. 옥문도에서의 그 단어장난도 그랬지만 이번엔 더 이해하기 어렵더군요.
- 악마가 와서~ 다음. 즉, 카도카와에서 낸 문고본 5번은 '이누카미가의 일족'입니다. 좀 마음을 가다듬은 후에 봐야겠습니다.
- 시간이 나면 란포지옥이나 란포-R에 대해서도 좀 적어 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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