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필리포스 2세가 '누구누구의 아버지'로만 기억될 정도의 인물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역시 너무 뛰어난 아들을 둔 탓인지 알렉산드로스의 아버지로서만 기억되는 경우가 많지요. 하지만 알렉산드로스의 군대와 강대국 마케도니아는 아버지가 이뤄놓은 것을 알렉산드로스가 계승했을 뿐으로 알렉산드로스는 딱히 한 일이 없다는 평가도 있고 그런 평가가 완전히 틀렸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 전까지 내전과 외국과의 분쟁으로 약해지고 분리되어 있던 마케도니아를 하나로 합쳐 그리스 세계의 최강국으로 만든 건 틀림없이 필리포스 2세니까 말이죠.
338년 8월. 카이로네아. 필리포스가 이끄는 마케도니아군은 보병 3만에 기병 2천을 헤아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상대편인 '그리스 연합(연합이라고 해도 전체연합은 아니고 아테네와 테베가 주도한 남부 그리스 도시국가 연맹)'은 제대로 된 병력통계가 전해지지 않고 있지만, 당시 스파르타의 성인 남자가 천 명을 넘지 않던 것을 감안하면(천 명이라고 기록했지만 자국의 국력을 축소해서 기록하진 않았을 터이고 과장되었음을 감안하면 천 명 이하라고 하는 게 현실적이겠죠) 마케도니아의 저 병력 앞에서 말그대로 와르르 무너졌다는 게 당연하게 느껴질 정도의 병력이었을 겁니다.
병력차가 얼마나 났건 필리포스2세가 이끄는 마케도니아군이 완승을 거뒀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한 것이었고 카이로네아 전투 후 필리포스2세는 그리스 세계를 이끄는 지도자의 위치에 서고 마케도니아는 도전 불가능의 초강대국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필리포스2세는 이미 약해질 대로 약해진 페르시아 제국으로의 침공을 단행합니다. 네. 아들보다 아버지가 먼저 페르시아로 쳐들어갔던 겁니다. 그리고, '실패'하지도 않습니다. 그렇다면 마케도니아군이 페르시아로 쳐들어가는 시기가 알렉산드로스 즉위 후로 미뤄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336년 소아시아를 침공한 마케도니아군 1만은 별다른 저항없이 소아시아 해안지방을 점령하지만, 필리포스2세가 '암살'당하는 바람에 더이상의 진공 없이 철수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그 후 2년 간은 다시 '내전'상태로 돌아가게 되니까 말이죠. 그리고 그 2년 간의 혼란기를 정리하고 등장하는 것이 바로
'알렉산드로스 대왕'
입니다. '왕권'과 '야망'까지 물려받았다고 평가되는 알렉산드로스는 페르시아와의 전쟁을 완전히 끝내겠다는 각오로 헬레스폰트를 '다시' 넘어가게 되고. 그가 이끈 군세는 아버지가 거느렸던 것보다도 더 많은
'보병 4만3천, 기병 5천5백'
이었습니다. 이 군세를 막아내는데는 '인간''낙타''말'로는 부족했습니다. 실존하는 가장 거대한 야수. '코끼리'가 필요했지만, 코끼리는 중동 지방엔 살지 않았으니까 말이죠 :b
# by 산왕 | 2005/12/02 12:56 | 건전한 역사잡상 | 트랙백 | 덧글(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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