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제국 시기 어떤 행동을 했는가에 따라 독일 총리를 나눠보자면,
아데나워 ~ 무시당한 자
키징어 ~ 내부저항자
빌리브란트 ~ 도망자
로 적을 수 있겠습니다.
먼저, 아데나워의 경우 무려 제2제국에서 공무원으로 일한 경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딱히 특출난 자리에 있었던 것도 아니고 해서 바이마르, 제3제국 기간 동안 '무시'당하고 있었습니다. 아니, 무시라고 할 것도 없군요, 그냥 '지방의 한 주민' 정도였다고까지 말할 수 있겠습니다(조금 심한 감이 있습니다만 :b). 나찌에 의해 조사당한 것도 나중에 많이 과장되었지만(대부분은 본인에 의해) 당시 흔히 일어나던 일로, 불려가서 간단한 심문을 받았을 뿐이라고 하지요.
하지만, 조사받은 것은 사실이고 제3제국에 반항적이었다는 인상은 충분히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제3제국의 몰락 후 지역사회에서 위원회를 만들 때 단지 '나이가 가장 많다'는 이유로 윗자리에 앉을 수 있었고, 나찌에 협력하지도 않았고 국민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연륜이 있는 인물을 찾던 군정을 이용해 전후 독일 초대 총리까지 갈 수 있었던 거지요.
그가 군정 하에서 독일을 3분해 바이마르를 독립시키려 했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입니다만, 후에 '강한 하나의 독일'을 주창한 그와는 맞지않는 이미지라 자주 '무시'되는 경력입니다 :b
나찌 치하에서 '저항'은 하지 않더라도 '반항'수준만 갔어도 최대한의 지지를 얻어낼 수 있었던 겁니다. '해외'에서 저항한 사람들은 '도망자'취급을 받았지요. 뭐, 이 부분은 가치판단을 떠나서 '내부반항자'인 아데나워가 먼저 권력을 잡았기 때문이라 생각되지만, 꽤나 오랫동안(세대가 바뀌었다고 할 수 있을 25년 후) 다수의 국민에게 받아들여진 생각으로, '도망자'보다는 '남아있던자'가 더 정당한 이미지를 갖고 있었습니다.
빌리 브란트는 '제2제국'의 전통이 다시 이어진(아데나워에 의해) 보수적 분위기의 전후 독일에서 '사생아'라는 이유로 정치적 불이익을 많이 받았습니다만, 그에 못지않게 '도망자'로도 비난을 받았습니다. '도망'은 쳤으나 '저항'을 했던 것입니다만, '도망'만으로도 그는 용서받을 수 없는 비겁자로 낙인이 찍혔던 거지요. 그가 여러 번의 실패 끝에 총리가 되는 게 전후 25년 후라는 게 인상적입니다. '남아서 저항'했다고 (스스로) 주장한 아데나워는 빌리가 선거에서 우세를 점하는 것 같으면 바로 지원유세를 나가서 '도망자' '사생아'가 독일을 통치하다니!라고 했다죠 :b 참 재미있는 영감님입니다.
마지막으로, 내부저항자인 키징어에 대해 적어야겠습니다만, 다음 기회로 미뤄야겠습니다. 국내사정과도 맞물려 미묘한 글이 될 것 같기도 해서 좀 더 정리해서 적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죠 :b
(이거이거; 키징어에 대해서는 영영 안 적게 되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이 엄습합니다만.. 설마 그럴 리는 없겠죠?!)
# by 산왕 | 2005/08/31 14:43 | 건전한 역사잡상 | 트랙백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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