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슈테판 츠바이크의 '전기소설'인 어느 정치적 인간의 초상을
니야님께 받아 읽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읽은 적이 있지만, 다시 보니 새롭더군요. 어느 부분이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만들어진 부분이고, 어느 부분이 역사적 진실인지 알 수 없어 곤란하긴 했지만, 재미라는 면에서는 아주 만족스러웠습니다.
'랑펠러'란 게임을 알고 계시려나요? :b 코에이에서 만든 나폴레옹을 주인공으로 한 시뮬레이션 게임입니다. 그런데, 이 게임을 해 보신 분이라면 마음에 안 드는 인물이 둘 있을 겁니다(물론, 아닐 수도 있지만). 바로, 푸셰(푸쉬에)와 탈레랑(탈리에르)으로, 꾸준히 충성심이 떨어지는 부하들이었죠. 거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코에이가 그런 요소를 고려했다니,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역시 젊은 시절의 코에이는(칸노씨가 있을 때까지라고 할지;) 꽤나 재미있는 회사였던 것 같습니다). 탈레랑과 푸셰는 오직 강한 자에게 붙으며 자신의 영달을 추구하는, 절대적 충성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배신자의 표본과 같은 인물이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탈레랑은 귀족 출신으로 왕당파로 끝을 내니, 혁명파->나폴레옹->왕정복고로 가는 과정에서의 변신은 어느 정도 희석되는 감이 있습니다만, 푸셰는 용서가 안되는 변절이 많은가 봅니다. 슈테판 츠바이크가 다룬 인물도 탈레랑이 아닌 '푸셰'였고 말이죠. 뭐, 수도사->격렬한 교회파괴자->열렬한 신자 와 같은 종교적 변절이나 '지롱드->루이16세 처형 찬성하며 자코뱅으로->로베스피에로를 처형하고 테리미도르파로->나폴레옹->왕정복고파->다시 나폴레옹->다시 왕정복고와 같은 처절한 정치적 변절. 게다가, 공산주의,금욕주의->자본주의,물질만능주의 같은 식의 사상적 변절까지. 적어도 슈테판 츠바이크의 서술에 의하면 그는 '뼈 속까지' 철저한 배신자입니다. 그 덕에 혁명시작부터 마지막 왕정복고까지 무사히 살아남아 수명이 다 해(늙어) 죽게 되는 거의 유일한 혁명파의 핵심멤버이니, 대단하긴 합니다만.. :b
투철한 도덕관념을 가진 분이라면, '뭐냐'라는 식으로, 이런 배신자의 일대기를 던져버릴 수도 있겠습니다만, 당시 프랑스(아니, 이건 언제나 그런 보편적인 거지만)는 '정의로운, 정당한'같은 말과는 거리가 먼 치열한 권력다툼이 벌어지고 있었고, 거기서 패하는 자는 쓰러지게 마련이었습니다. '유일한' 도덕주의자라는 로베스피에로는 개인적으로 고결한 자였지만, 결국 쓰러졌고 마찬가지로 (고결하진 않을지 몰라도) 영웅들(마라, 당통, 나폴레옹..)은 차례차례 쓰러져갑니다.
하지만, 배신자, 변절자는 끝까지 살아 남습니다. 바로 탈레랑, 푸셰같은 자들 말이죠.'황제시대'의 마지막을 고하는 자가
"10만대군보다는 100만대군이 강하다(!)"
에서 10만 대군을 이끌던 라파예트라는 건 의미심장한 듯 하면서도 코미디이지만(저기서 100만 대군을 이끄는 게 바로 '황제'이기 때문이죠) 그는 물리적으로 '살아'남을 뿐, 한자리 차지하지 못한 채 그냥 지내니 별 의미가 없고 말이죠.
아주 재미있는 책이었습니다. 혁명기, 그리고 나폴레옹 시대의 프랑스를 좀 더 이해하기 위해 꼭 읽어봐야 할 책이라고나 할까요 :b 그런데, 여기서 얻을 교훈은 대체 뭘까요? '강한 자에게 붙어라'라든가, '배신의 타이밍은 바로 이 때!'라든가, '먼저 치지 않으면 당한다'같은 실용적 교훈을 주긴 하지만, 도덕적 교훈(웃음)은 딱 하나인 듯 하군요.
'이런 자(배신자)를 조심하라! 그는 언제나 네 뒤를 노리고 있다'
(도덕적이지 않은데?;)
슈테판 츠바이크(혹은 번역자)의 문장력은 정말 대단합니다. 보면서, 무릎을 치게 만드는 명구가 여럿 있었습니다만, 그 중 이것. 첫 의회 출석에서 지롱드와 자코뱅(의회 내에서 자리하는 위치로 갈렸습니다. 좌-우 구분처럼, 평원-산악으로 의회의 위 아래로 갈린 셈이지요) 중 어느 편에 설 것인지 생각하는 부분의 묘사가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는 망설이지 않는다. 그가 평생 충실하며 절대 충성할 유일한 당. 그것은 바로 '다수당'이다'
:b